조선시대 정1품 관직에 오르고 최다 시조 작가 인정
고전문학계에서 조선시대 가장 많은 시조작품을 후세에 남겨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경평군 이세보라는 인물이 보은군 탄부면 평각리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것이 알려지고 있다. 이세보(1832~1895)의 자는 좌보이며 본관은 전주로 조선시대 시조집 「風 」가 발굴되면서 역사적인 중요한 인물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세보는 1832년(순조 32년) 6월21일에 아버지 이단화와 어머니 해평윤씨와의 사이에 4남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19세때 (철종 2년) 풍계군 당의 후사가 되었고 동시에 이름을 호로 개명하고 소의대부 종2품 경평군의 작호를 받았으며 20살때에는 의덕대부 종1품이 되었고 21살때에는 현록대부 정1품이 되었고 21살때에는 현록대부 정1품이 되어 철종의 수라상을 감선하는 직책을 맡았다고 한다.조선조 철종시대에 당시 외척세력에 의한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인한 관료의 부정등을 바로잡아 보려고 저항하다가 전라도 강진현 신지도에 위리안치되어 4년간 귀양살이를 하닥 고종의 등극으로 홍선대원군 이하응의 배려로 석방되어 광명한 생활을 하게 되어 형조참판, 병조참판, 도총관, 한성판윤, 형조판서, 공조판서, 판의금부사등의 관직을 지낸바 있다. 이세보는 의지가 매우 강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로 세도가의 비리와 부정에 고민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세도정치의 폐단을 철종에게 고발하여 정의로운 정치와 사회 조성에 전력했던 역사적인 인물이다.
이런 비리와 비판의식을 이세보는 문학작품을 통해 표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있어 정당한 사회와 이상사회를 갈망하는 마음은 그가 평생 동안 뿌리깊게 지녔던 사상이었다. 또 왕족으로 지위가 높은 벼슬을 지낸 인물이었고 철종승화시 죄인의 몸이 아니었다면 그는 왕위에도 오를 수 있었던 처지에 있던 그가 관료의 비행을 시조로써 읊었던 것이다. 이세보의 족보상 이인응이고 선조의 2째 아들인 의안군의 9대손이며 능원대군의 8대손이다.
이인응의 증조인 이복현의 묘는 돈논리, 지금의 탄부면 평각리에 있으며 이복현은 2남1녀를 두었는데 2남인 이제로는 이인응의 조부가 된다. 이인응의 조부이신 이제로는 2남1녀를 두고 백부인 이문화와 아버지인 이단화의 4남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재 탄부면 평각리에는 이인응의 백부인 이문화의 직손들이 살고 있으며 이인응의 막내동생 이헌응의 아들 이재용의 호적이 남아 있으며 이인응의 직손들은 서울로 이주해 살고 있다.
한편 이세보는 지난 97년 문화체육부 문화인물로 선정돼 그의 품성과 그가 남긴 시조를 발굴 연구하는데 고전문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그가 남긴 시조중 속리산을 배경으로한 시조가 다수 발굴되고 있어 보은출신 인물로 재조명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저작권자 © 보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