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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을 보내며
[1404호] 2018년 11월 29일 (목) (사)한국전통문화연구원 이사장 이장열 webmaster@boeuni.com

 근년의 기후는 특이하게도 한발과 폭우의 양극단을 오가고 있는 것 같다. 농부들의 피를 말리는 심한 가뭄이 계속되다가도 일단 비가 오기 시작하면 이내 홍수로 변한다. 수시로 질금질금 분출하는 화산은 별일 없지만, 오래 참은 화산은 일단 용암분출이 시작되면 엄청난 재앙을 일으키는 모습과 같다고나 할까. 하여튼 금년 여름 가뭄은 너무 심했다.
 날씨의 신(神)이 국립공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봐주지도 않았다. 물마른 계곡은 바닥을 짚고 앉았고 끊어진 물길아래 자그만 괴임물도 청태들이 끼어 장구벌레들의 온상이 되고 있었다. 맑은 계곡물은 더 이상 국립공원의 그것이 아니었다. 더 심한 것은 서민들의 삶이었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며 울상인 착한 얼굴들이 나를 울적하게 했다. 보잘 것 없는 몇 푼어치의 물건을 길바닥에 놓고 앉아서 오가는 얼굴들만 올려다보는 찌든 할머니의 표정이 나를 슬프게 했다. 며칠 전에는 중소기업을 하는 후배 여사장과 통화를 했다. “사업은 잘되느냐?”는 의례적인 인사에 바로 “아유, 안되요” 했다. 이전의 느긋하던 태도는 간곳이 없었다.
 서민 사는 이야기”가 이런데도 정치권은 딴 세상이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갑자기 밝은 표정을 지으며 빙긋빙긋하는 그 얼굴을 보는 것도 지겹다. “너는 즐겁냐? 히죽거리기는! 네 경제는 아마 잘 나가는가 본데…”하는 백수의 째림이 공감된다.
 며칠 전에는 즐겁지 않은 세금을 또 물었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유엔에서 제재중인 북한과 몰래 거래로 그들의 석탄을 팔아주었다고 한다. 또 엄청난 돈을 남북회담 때 북한에 갖다 주고 송이버섯을 얻어왔다는 소리도 들었다. 몇 년 전에는 우리도 수해를 많이 당했는데 북한 수해만 걱정하는 여권 정치인의 말을 들은바 있다. 우리 쪽 수해보다는 저쪽 수해에 더 관심이 있고 제발 저쪽에서 우리가 보내는 구호금품을 받아주기를 간청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서 그 비굴한 저자세가 싫었다. 내가낸 세금이 저리로 새는 것 같아 눈총스럽기도 했다.
 이전의 정권에서 일한 인사들에 대한 영장발급과 인신구속이 너무나 쉽게 또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얼마 전에는 고위 국회의원 한 사람이 북한에 가서 소위 저들의 젊은 왕을 만났는데 방명록에 기록한 내용이 싸인과 함께 인터넷에 공개된 바 있었다. 처음 그 내용을 보고 모두들 기가 막혀 하고 의외로 젊은이들 중에서도 갈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식뻘 밖에 안되는 젊은 왕(?)한테 나이 지긋한 이쪽의 정치인이 그렇게나 지나친 과찬의 말씀을 올린(?)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선동의 명수 북한 최고의 아나운서라는 이춘희가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넓은 하체를 들썩거리며 열을 올려 왕을 칭송하는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저 늙은이는 그 밑에서 먹고 사니까 그러겠지만 회담차 올라간 우리 대표가 그들의 왕에게 “국민을 사랑하시고” 하는 식의 찬사소리는 너무 간사해서 못 듣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사랑하시고” 운운... 하는 소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해괴한 말이다. 이것은 국민들을 내려다보고 다스리는 전제군주(왕)에게 올리는 황송한 찬사다.
 아! 금년 들어와서는 이런 우울한 기분이 내내 가시지를 않았다. 게다가 수개월 전에는 사람 잡는 어리석은(?) 한 장사꾼으로부터 사기까지 당하고 보니 정말 이 좁은 산골에서 굼벵이 같은 삶이 싫어졌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넒은 동해를 찾았었다. 감포 앞바다 문무대왕의 해중릉이 있는 “대왕암” 뒤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먼 지평선! 그리고 세찬 파도의 요동을 보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산골로 다시 돌아와 한동안 마음을 정리한 후 “에잇! 떨쳐버리자”하고 일어섰다. 창문을 여니 밖에는 와-! 첫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저 눈을 보면서 이제는 새로 오는 계절을 맞아 촌음을 아껴 내실 있는 삶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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