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성(수한 동정, 대도레코드 전무)
앉을자리 예비없는/ 가난한 동리에 태어나/ 한여름 꿀벌인 듯 일생두고/ 왕왕거리며 일해 왔건만/ 이제 또 뒷사람에 앉을 자리/ 마련 못한채/ 가려하니/ 부끄럼과 탄식으로 머리들곳이 없네/ 요즘들어 부쩍 김동환의 시 『부끄러움』이 새삼스럽게 느껴짐은 우리 조국의 현실과 국민 개개인이 겪고있는 고통의 차원이 점점 생각보다 더 빨리, 더 심각하게 생활의 피부 깊숙히 파고 들어와 있기 때문이리라. 나라일은 맡은 사람들은 국민에게 부끄럽고, 세계에 부끄럽고 그로 인하여 구조조정속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가족에게 부끄럽고, 경영을 하던 사업주는 사원에게 부끄러운게 현실이 아닌가 싶다.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하느님의 선물인가. 사람은 태어나서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고 가야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운명은 주어진 것이라지만 후천적노력에 의하여 삶의 질을 바꾸어 줄 수도 있다고 본다. 태어나면서 터뜨리는 첫울음의 의미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어떤이는 이 험한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고뇌의 함성이라고 하고, 어떤이는 아, 이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정말 멋지게 살고 가야할 축복된 의미가 있는 곳이야 라고 감격의 울음을 터뜨린다고 한다.
낙관론과 비관론의 차이일뿐이다. 또한 어떤생명은 옥토에 떨어지는가 하면 어떤 생명은 황무지 자갈밭에 뿌려지기도 한다. 자갈밭에 떨어진 생명의 씨앗은 갖은 악조건속에서 오직 살기위하여 미래에 피울 꽃의 모습을 상상할 겨룰도 없이 오늘을 살아가야 하지만, 환경이 좋은 옥토에 떨어진 생명은 미래에 피울 갖가지 색깔의 꽃을 설계하며, 아름다운 열매의 모습까지 그리며 살아가리라. 과연 이 두가지 형태의 삶을 보고 무슨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가. 지금 태어나는 우리의 분신인 후손에게 그 많은 외채의 상속을 대물림할 것인가. 지도자의 잘못으로 늘어난 세금을 유산으로 물려줄 것인가? 태어나는 아이가 엄청난 외채를 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자랄까 하는 괜한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이 모든 원인을 분석해보면 욕심이 빚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이 든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경영, 허영이 낳은 낭비의 흔적등 우리 모두가 현실로 보고 있지 않은가. 거듭난다는 말이 절실하게 되뇌여야 할 오늘에 있어 어릴적 어머니가 타이르신 말 한마디 "얘야 학교에 지각을 하더라도 남의 보리밭을 가로질러 가지마라"이 말 한마디를 평생의 좌우명 처럼 살아온 이어령교수의 교훈처럼 부모님의 따뜻한 이야기는 어떤 명언보다도 훌륭하다고 모두가 느끼지만 마음 뿐이고 실천은 자기 이익에 급급함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는 물질적인 유산 보다도 이런 정신적인 유산을 몰려 주어야만이 어떤 고난이 닥쳐도 올바른 정신력으로 꿋꿋한 삶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만능으로 키운 아이가 궁핍한 생활에 부닥칠 때 과연 헤쳐 나갈수 있는 힘이 생겨날 수 있을까. 꿀벌처럼 왕왕거리며 일만하고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운 유산만을 남겨서야 되겠는가. 유산은 재산을 돌려줄 수도있지만 채무도 돌려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만은 빚만은 물려주지말자. 곧고 올바른 정신만이 험한 세상의 강을 건널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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