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절-사람 하나되는 법이 머무는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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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절-사람 하나되는 법이 머무는 속리산
  • 보은신문
  • 승인 1998.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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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보은으로 오세요 속리산 법주사와 송림⑴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道不遠人 人遠道)

산은 세속을 여의지 않은데
세속이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
(山非離俗俗離山)

신라 헌강왕 12년(886년) 속리산 모덕암을 찾은 고운 최치원이 읊은 시다. 신록이 우거져 푸르름의 절정에 달하는 7월. 속리산을 찾는 사람은 잠시나마 경제 대란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 최치원의 시에서도 나타나듯이 산과 사람 그리고 도, 이 세가지가 서로 멀리할수록 세상은 좋아진다.

인간의 세상과 도의 자리가 하나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읊은 최치원의 탄식이 사람들을 속리산으로 향하게 한다. 속리산의 풍광은 세속의 일들을 떠난 마음으로 산을 즐기는 참맛을 주기에 한치의 모자람이 없다. 속리산 전체는 하나의 도량이다. 속리산을 둘러쌓은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유사에 속리산에 대한 유래가 전하고 있다. 원래 속리산은 구봉산이라고 불렀고 어느날 금산사의 고승진표율사가 구봉산을 지나가던 중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달구지를 끌고가던 소가 진표율사의 앞에 이르러 무릎을 끊고 우는 것이었다. 달구지를 탄 사람이 내려서 “이 소들이 왜 스님을 보고 우는 것입니까. 스님은 어디서 오시는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금산사의 진표라는 승인데 일찍이 변산의 부사의방에 들어가 미륵과 지장 두보살 앞에서 친히 계법과 진생을 받아 절을 짓고 오래 수도할 곳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 소들은 겉으로 어리석으나 속으로는 현명하여 내가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불법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무릎을 끊고 우는 것입니다.” 율사의 말을 들은 사람은 감동하여 “소행에게도 이러한 신암심이 있는데 사람에게 어찌 신암심이 없겠습니까”라고 말한 뒤 낫을 들어 머리카락을 잘랐다.

율사는 그와 함께 구봉산 골짜기에 이르러 길상초가 난 곳을 보고 표식을 남김후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라는 절을 창건했다. 달구지를 탄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진표율사의 무릎 아래서 머리를 깍고 출가한 곳, 다시 말해 세속을 여의고 입산한 곳이란 의미에서 구봉산은 속리산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속리산의 대표적인 가람인 법주사는 의신스님에 의해 개산되어 진표율사와 그의 제자 영심스님등에 의해 흥성했을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법주사는 산내 암자를 제외하더라도 그 경내에 3점의 국보(쌍사자석등 5호, 팔상전 55호, 석연지 64호)와 6점의 보물(사천왕석등 15호, 마애여래좌상 216호, 대웅전 915호, 원통보전 916호, 신법천무도 병풍 848호, 쾌불탱 1259호) 9점의 유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1990년 점안된 웅장한 청동미륵대불은 법주사의 상징물로 미래의 문화재로 뽑고 있다.

법주사 일원은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명한 정이품송과 망개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속리산은 불교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도량임을 알 수 있으며 법이 머무는 땅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속리산은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속리산 전체를 둘러쌓고 있는 소나무숲이다.

속리산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103호 정이품송은 속리산이 소나무산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법주사로 향하는 오리나무숲을 걷다보면 사방 하늘을 가리고 빼옥히 들어선 소나무의 풍경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진경이다. 경제 한파에 찌든 때를 벗고 속리산 법주사로 향하는 발길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떠나는 무사으이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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