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만에 남편 전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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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만에 남편 전사 확인
  • 송진선
  • 승인 1998.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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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미망인 한동순씨
“어디에 있든지 살아있으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일념하나로 48년간 행방불명된 남편을 기다리며 젊은 시절을 다 보낸 한동순씨(77, 보은삼산, 이윤섭씨의 빙모)는 얼마전 한통의 편지를 받고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보다 더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월20일 6·25전쟁 직후 소식이 끊긴 남편 김수영씨(생존시 78, 옥천 청산)가 전사했다는 육군 참모총장 명의의 전사확인서가 도착한 것이다.

인생을 고쳐볼 기회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시부모 봉양하고 자식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것이 보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오로지 남편이 살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하루하루 보낸 48년 인고의 세월동안 눈물은 모두 말버린줄만 알았는데 남편의 전사 확인서를 받아든 순간 알 수 없는 서러움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행방불명의 남편이 장렬히 전사한 군인으로 떳떳하게 돌아와 남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는 한 할머니는 이제야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있다. 한 할머니는 6월24일 시동생, 딸, 시위, 외손자, 조카 등과 함께 처음으로 남편의 제사를 모셨다.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수도없이 절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그동안 남편없이 혼자 가정을 잘 이글어온 한 할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보은 월송에서 태어난 한 할머니가 김수영씨에게 시집을 간 것은 19세때. 일본에서 살다 대동아 전쟁으로 다시 남편의 고향인 청산으로 돌아왔으나 한국의 6·25전쟁이 다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10년간 생활한 남편은 젊은 한 할머니를 두고 전쟁에 참전했고 다시 슬하에는 7살과 5살된 딸 둘만이 남겨져 있었다. 주위에서는 맘을 고쳐먹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라는 권고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인 한 할머니는 보따리 장사를 하며 딸 둘과 시부모의 생계유지에 허리를 펼날이 없었다.

왕복 100리가 넘는 보은읍내는 물론 학림, 장안, 탄부지역등 보은군 구석구석을 걸어서 물건을 팔았다. 그러다 보은읍내로 이사를 왔고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보따리 장사를 했는지 다들 『떠돌이 아줌마』로 부를 정도로 한 할머니의 삶은 보따리 장사를 해야만 살 수 있는 가난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머리가 좋은 탓인지 딸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나 맏 딸은 돈이 궁해 학업을 포기하고 둘째딸은 악착같이 대학교까지 마치게 해 지금은 수원에서 대학교수로 있을 정도다.

첫째 딸도 좋은 신랑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보람이 있었고 그동안 더 바랄게 없었다. 단 하나 늘 가슴 한 구석에 아프게 자리했던 남편도 이제 명예로운 전사자로 돌아왔고 국가 유공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한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큰 딸은 “어머니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갈 기회도 많았지만 자신의 십자가를 당당히 받아들고 험한 세상을 훌륭하게 살아와 아버지도 이렇게 명예롭게 우리에게 살아오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감격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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