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지 2 (흙처럼 진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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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지 2 (흙처럼 진솔하게)
  • 김종례 (시인)
  • 승인 2018.05.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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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 따사로웠던 4월 초순 어느 날, 겨우내 어두운 서랍 속에서 때를 기다려 온 씨앗들을 마당 가득 뿌려 보았다. 보석이라도 숨기듯이 이리저리 뿌리고 또 뿌렸었다. 흙으로 한 채 살짝 덮어주고는 물도 촉촉이 뿌려 주었다. 씨앗은 따스한 흙의 온기와 진솔함을 만난 그 순간부터 숨을 죽이며 몸살을 앓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드디어 숨구멍을 찾아서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 보는 요즘이다. 처음에 점 하나를 찍었을 때는 제 본분을 선뜻 드러내지 않았지만, 싹이 나와 목을 곧게 세우고 손톱만한 떡잎이 살랑거리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제 신분은 서서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마치 갓난아기가 눈 맞추기를 하고 옹알이를 하면서 제 핏줄을 조금씩 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토종인 백일홍, 분꽃, 채송화, 접시꽃, 맨드라미, 수세미, 금낭화 등… 그리고 수많은 외래종이나 유전자 변종까지 뿌리의 액션 타임은 모두 다르다. 성경에도 사람의 마음을 옥토와 자갈밭, 가시밭 등으로 구분하시고, 말씀의 씨앗이 싹트는 정도를 비교하시지 않았는가! 나도 오래 기다려도 소식이 전혀 없는 묘판을 찾아서, 가을 꽃씨를 다시 뿌리고저 흙을 헤치다가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흙 속에서 아직 실뿌리도 박지 못한 채, 아지랑이처럼 고물고물 꿈틀거리는 생명체를 만나는 순간, 나도 따라서 살얼음판을 디디는 양 숨을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들켜버린 귀한 보석을 꼭꼭 숨겨 놓듯이, 다시 흙으로 정성껏 덮어 주고 한숨 돌리게 되었다, 생명의 찬가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다. 공기도 물도 바람도 하늘까지도 사랑의 입김을 보내주며 흙과 상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뿌리의 도약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흙의 진솔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생육의 계절  5월도 어느새 하순을 지나고 있다.
 씨앗의 발아는 하늘과 땅에 대한 믿음이 배어있는 창조의 과정이다. 뿌리의 소망은 막연한 욕망이 아니라 태산과 같은 열정이요 기원일 것이다. 흙을 신용으로 하는 거룩하고 위대한 예술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긴 시간 용단과 침묵을 다짐하며 오래 참아온 씨앗과 우주를 향한 창조의 순간을 기다리는 흙의 진정한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창작품을 피우기 위한 흙의 진솔한 몸부림이 어찌 우리 인생에게 감동이 아니랴 ~~
 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의 <타라로 돌아가리라>는 외침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랑도 자식도 명예도 재물도… 모든 걸 다 잃은 그녀가 인생 사각지대에서 돌아갈 곳은 오직 대지! 정직한 땅뿐임을 시사해 주는 장면이다. 완성을 향해 영원히 존재하는 흙의 진솔함이 여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진정 흙(땅)은 거짓을 모른다. 오로지 저를 믿어주는 모든 것에 몇 십배 몇 백배의 결실을 돌려주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분투할 따름이다.
 나는 해마다 흙에 대한 체험을 이렇게 반복하면서, 5월이 오면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다시 뭉글거려 온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면서 도약의 액션을 하기 바란다면, 그 정신 속에 진실과 정직과 신의를 정립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직성이 결여된 아이는 자신을 믿는 데도 1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아이에게 믿음과 진솔함이 결여되면, 따라서 그 아이의 미래
에 대한 꿈과 창의력도 결핍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정립된 아이는 목표점을 향하여 질주하기 마련이다. 정직성이 없는 대의는 믿음이 없는 사랑이다. 허술한 건축물 안에 화려한 인테리어 장식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진실을 배제하고는 그 무엇도 위대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 안에 대의가 있는지와, 그 대의를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는 진솔함이 존재하는지를 바라보아야 할 지금이다. 아이의 마음 뿌리가 잘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5월이다. 푸르름의 원천인 뿌리가 도약하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5월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 곧 치러질 6.13 지방선거에서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출마자의 정직성을 확인해야 할 시점이다. ‘그 가슴 속에 공익을 위한 진정한 대의가 있는지와, 그 영혼 속에 군민들의 삶의 원천인 흙의 진솔함이 배어 있는지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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