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 고창 선운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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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 고창 선운사 기행
  • 보은신문
  • 승인 1998.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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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탐방기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니다.
서중주의 「선운사 동구」


어제 저녁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잠잘에 들어서인지 아침에 눈을 뜨는데 웬지 개운치가 않았다. 출발지인 보은문화원 광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평일 이런 문화답사를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보은에서는 처움으로 시도해 보는 문화유적탐방이 아닌가! 문화원 광장에 도착해 보니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삼오오 무리를 지어 속삭이는 소리 대부분이 이번 문화답사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상쾌한 아침바람을 맞아서인지 아침에 무거웠던 기분은 언제 그랬는지 싶을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오늘 문화답사의 일정에 대한 소개를 받고 주최측에서 나누어 준 자료집을 읽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푸른 녹음은 벌써 한여름을 연상케 하였고 간간히 핀 이름모를 꽃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자김듯한 탐방객들을 태우고 2시간쯤 달려 버스는 전북 고창 읍내 한복판에 위치한 모양성 일명 고창읍성에 도착했다.

고창읍내 위치한 모양성은 제법 잘 복원 되어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또한 이 모양성을 세번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으로 간다는 민속신앙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머리에 돌을 이고 이모양성을 밟는 행사가 연중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모양성 전체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짜여진 이정 때문에 아쉬운 마음으로 고창읍성을 나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옛날 초가집보다는 조금 큰 생가는 잘 복원돼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으며, 전라도가 예향의 도시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고인돌 떼무덤으로 유명한 상갑리라는 곳이다. 여느 산골마을과 다를바 없어 그냥 스쳐지나갈 법한 돌무리였지만 고대문화의 발상지를 상징하는 고인돌의 모습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다시한번 쳐다보게 하였다. 이러한 돌무덤, 고인돌이 고창 일대만해도 1500여개 정도가 산재해 있다는 사실에 고려문화의 역사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출발해 두곳을 둘러 보았는데 시계는 벌써 12시가 넘어가고 있었으며,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곳이 오늘 답사의 최종 목적지인 선운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더욱 허기가 심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향했다. 평일이어서 인지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즐비한 상가와 음식점들은 한산해 도착하는 손님을 친절한 목소리로 끌고 있었다. 아침일찍부터 시작한 여행이 어서인지 시장이 반찬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전라도 음식의 맛깔을 그대로 느끼는 점심이었다. 시사를 마친후 일행은 선운사로 발길을 재촉했다.

선운사 가는 길의 한쪽 귀퉁이의 풀숲에 가려져 자칫 그냥 지나칠 법한 곳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비가 서 있었다. 『선운사 동구』라는 시비속의 시구절은 선운사의 풍경을 미리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다시 선운사 경내에 거의 다왔을까 하니 다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평범하기 이를데 없어 보이는 비석이었다. 많은 부도탑들이 산재한 가운데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세겨진 비속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에 새삼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를 실감하게 되었다.

비석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문화답사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우리 선조의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를 실감하는 현장이었다. 드디어 일행은 선운사 경내로 들어갔다. 보은에서 가까운 속리산에 위치한 법주사만큼은 크지 않았지만 아담하면서도 고풍이 흐르는 수수한 산사였으며, 그 유명하다는 동백꽃은 4월말경부터 5월초까지 절정을 이룬다는 안내자의 설명에 지금 볼수없겠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짐을 어쩔 수 없었다. 뒤산에 가특한 진초록의 동백숲은 탐방객의 마음에 동백꽃 붉은 울음 토해낼 그 계절에 다시한번 선운사를 찾아야 겠다는 여운을 남겼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선운사 경내를 둘러본 후 또 하나의 유적을 찾아 선운사에서 도솔산 오솔길을 따라 40분 정도 올라가니 도솔암이라는 암자 뒷편에 위치한 동양최대의 마애불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 지친 몸이었지만 마애불을 가까이 서서 보겠다는 생각으로 마애불을 가까이 서서 보겠다는 생각으로 마애불앞에 서서보니 역시 크다는 생각과 함께 선조들이 보여준 이러한 문화의 흔적을 새삼 실감나게 하였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름아닌 마애불의 배꼽정도에 위치한 네모난 서랍모양이 있는데 이것은 마애불의 효험을 질투한 일본사람들이 콘크리트로 막아 놓았다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일제가 우리문화를 침탈하려는 정도를 알 수 있었다.

평소 알지 못했던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볼 것을 다보았다는 생각에서인지 내려오는 길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행과 이런얘기 저런얘기를 나누며, 내려 오다보니 벌써 일행을 싣고갈 버스가 와 있었다. 지친 몸을 버스에 싣고 돌아오는 길가에는 이름모를 노란꽃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차창으로 보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누런 보리밭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보리를 수확하고 보리밭에 불을 질러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럴듯한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잘 복원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끝이지 않는 고창읍성을 보면서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을 연상케 했으며, 역사적으로 충분한 복원의 가치가 있는 삼년산성도 빠른 시일내에 복원돼 지역주민의 휴식과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처음 떠난 문화탐방이었지만 단순한 관광이 아닌 문화유적을 돌며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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