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투어기간 중에는 채식주의자인 아내의 식사문제가 늘 걱정이었다. 그랜드 캐년을 포함한 일대 관광시에는 거의 한국음식을 먹지 못한 아내는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LA로 오자 이제는 한국식사를 할 수 있다고 뛸 듯이 좋아했다. 그래서 한국음식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엄마손”인가 뭔가 하는 간판이 붙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주 조그만 식당으로 홀에서 이것저것 빈 식기를 치우고 식사를 상에 갖다놓고 하는 초중년의 여자가 이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같았다. 아내도 오랜만에 본 비빔밥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나도 “우거지갈비탕”을 맛있게 먹었다. 아내가 주인여자의 요구대로 음식값과 세금을 계산하여 주었다. 그리고 팁은 테이블에 놓고 가려고 하고 있는데 별안간 그 여자는, “팁은 요? 팁도 주셔야죠!” 하였다. 본래 팁이라는 것은 손님이 고마워서 내는 것이고,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1할 정도의 팁을 주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손님이 팁을 놓고 가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여자는 영어가 신통치 않은 것을 보니 미국에 온지도 별로인 것 같았다. 미국에 오자 곧 “이게 웬 떡” 팁문화에 먼저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아내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팁요?”하니 “아, 한국에서 왔어요?” 하며 여기는 음식값의 10-15% 팁을 당연히 주게 되어있다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그것을 모를 리가 있는가? 나는 재빨리 팁으로 몇 불만 더 주라고 하면서 아내와 같이 한국에서 온 촌놈이 되었다.
그 집을 나오면서 아내는 씁쓸해 했다. 아내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팁을 주려고 하는데 당당히 요구하는 그 여자의 태도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음식장사하면서 손님이 와서 팔아주면 그것이 고마운 일이지 어떻게 주인이 손님에게 팁까지 챙기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논리에 변명의 여지는 없으며 알뜰한 여자의 마음이 느껴져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식사 때는 우리가 멕시코에서 자주 먹던 따코를 먹으러 “따코 벨”로 들어갔다. 거기서 따코를 먹으면서 보니 한국 등 여러 나라 젊은이들이 앉았던 테이블위에는 팁이 놓여 있는 곳도 있지만 없는 곳도 있었다. 아무도 그 한인여자처럼 “팁은요?” 하지 않았고 자질구레하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고마워서 팁을 테이블에 놓고 왔다. 비로소 좁아졌던 마음이 그랜드캐년의 광활한 마음으로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팁으로부터의 자유! 자유로운 팁문화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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