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박만식씨의 삶
"모든 사물에도 인간의 생명처럼 수명이 있는 법 입니다" 보은읍 장신리 우회도로옆으로 온갖 잡동살이들이 쌓여 고물상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기에는 하나도 쓸모없이 버려진 물건을 모아놓은 것같이 보이지만 대부분 박만식씨의 애환이 숨겨진 물건들이다. 입구를 찾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길은 마치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고 군데군데 박씨의 작업장이 나온다. 한쪽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을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전자제품을 고치고 반대편에서는 괴목을 다듬는 기계톱과 선반등이 박씨의 작업장이다.이곳 여기저기에 모여진 잡동살이들은 쓸모 없는 것을 구분한다는 것이 어리석을 정도로 박씨에게는 모든 것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인생과도 같은 물건들이다.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바뀔뿐이지 쓸모 없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고장났다고 해서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버려지는 물건들이 많아지는 시대가 안타깝다"고 말하는 박씨의 얼굴에는 12년전 사고로 회복되지 않는 자신의 육체로 인해 잃어버린 인생을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다. 박씨는 가구와 대목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목수일을 하게 되었고 배우지 못한 탓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건축일을 시작했다.
남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박씨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던 중 생사의 고비를 수업이 넘기면서 남은 것은 망가진 육체뿐이었다. 고된 노동과 몸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망가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박씨의 정신이었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의 역할도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가정생활마저 혼돈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박씨는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심적불안감으로 남편의 역할 아버지의 역할마저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어떠한 물건이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쓸모 있는 물건이 되듯이 자신이 필요한 부분이 어딘가에는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쌓여있는 물건들이 지금은 주인을 잃어 버려 박씨의 손에 들어왔지만 주인을 다시 만나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망가진 자신의 육체를 닮은 온 세상의 사물을 다 모으고 싶은 것이 박씨의 욕심일 것이다. 박씨의 이런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다. 박씨가 모아놓은 물건 하나하나에 가치가 있다는 순간을 느낄 때 박씨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박씨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IMF를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만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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