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는 취미보다 농업의 한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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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는 취미보다 농업의 한분야
  • 보은신문
  • 승인 1998.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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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혼 심은 야심작 관광상품 개발할터 서동명씨(산외면 신정리)
“아직 시작에 불과한 나무와의 싸움을 꽃 피우기 우해 고향을 찾았습니다” 보은에서 산외면 장갑리를 거쳐 괴산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도로변에 하우스로 꾸며놓은 서동명씨의 분재농장이 나온다. 아직 농장이라기 보다는 서씨의 작업장인 이곳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 대원리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고 평소 서씨가 경기도에서 해오던 분재 작업장을 옮긴지는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서씨가 분재를 시작한 것은 보은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은농공고를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당시만해도 축산과를 선호해 서씨 또한 축산과를 택하게 되었지만 서씨의 관심은 화훼온실로 집중했다. 보은농고시절 근로장학생으로 화훼온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서씨가 분재를 만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3학년때 본격적으로 화훼분재로 과제를 이수해 지도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학교졸업 후 직업을 택해야했으며 학창시절 해오던 온실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분재기술을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경기도 성남에 있는 분재원을 찾았다. 당시 기술을 배우는 입장이어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으로 봉급을 대신했다. 1년동안만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어렵고 힘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기술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울것이 너무도 많았다.

이러는 동안 서씨는 군대입대를 하게 되었고 공군부대에서 방위를 받으며 자신이 배운기술을 인정받아 부대내 조경나무와 화단을 가꾸며 비교적 어려움없이 군생활을 마쳤다. 국화로 비행기의 수형을 만들어 출품도 하면서 그가 배운 기술을 썩히지 않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1년후까지 분재원에서 기술을 익혀 이제는 독립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버님의 도와주신 3백만원으로 서울 잠실에 농원을 꾸몄다.

처음에는 출장위주로 농원을 운영하다가 임대기간이 끝나게 되어 경기도 성남시로 옮기게 되었고 성남에서는 지도소에서 실시하는 특작강의를 하면서 분재의 가능성을 우리농촌에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지도소의 도움으로 일본을 비롯 선진지를 견학할 기회가 있어 외국견문을 넓이기 시작했고 다시 고향에서 본격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남들이 하지않은 보은지역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지금 보은농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서씨는 “대도시에서 성공한 사례를 보고 보은에 억지로 적용하려는 농업정책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서씨가 고향에 내려와 정착하면서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는 것은 분재 소재개발이다. 일반인들의 생각으로는 소득의 가능성이 막연하지만 생산만하면 상품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서씨의 주장이다.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소재개발에 전념하게 되면서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분재를 배우겠다고 서씨의 작업장을 찾는다. 분재를 배우겠다는 일반인들에게 서씨는 쉽게 마음에 문을 열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분재와 서씨가 생각하는 분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취미생활로만 생각하고 찾아오는 그들에게 분재는 취미를 뛰어넘은 농업의 한 분야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일반인이 분재를 쉽게 생각하고 취미생활을 위해 선택하고 있는반면 서씨는 농가소득을 높일수 있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오늘도 보은 속리산의 자연 환경에 대한 천혜의 자원을 자신이 가꿔온 분재속에 담기위해 서씨의 혼을 불어놓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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