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매월 제 어머니에게 오십만 원씩 용돈을 주고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든 대부분 다시 환원은 되지만 지지난 주말이 용돈을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일이 있어서 오지 못하고 다음 주에 오겠다고 하니까 알았다고는 하면서도 좀 실망스러운 눈치다. 통장으로 이체를 해주어도 되지만 아내는 현찰이 든 봉투로 받는 것을 좋아 해서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기에 한 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지난주에 아들이 와서 용돈을 주려 하기에 내가 지난해 한 얘기가 생각나서 장난삼아 고추를 사백포기 정도 심었다고 하니까 저도 생각이 났는지 그러면 약속대로 이십만 원은 깎아야겠다고 하면서 삼십만 원만 주려 하니까 아내는 네 아버지가 심은 것이지 나하고는 상관없다며 다 달라고 하고 아들은 누가 심자고 했든 부부는 일심동체니 분명히 약속을 했다며 약속은 약속이니 그럴 수 없다고 하니까 아내는 아내대로 절대 동의 할 수 없다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칼자루는 아들이 쥐고 있으니 처분만 바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사건의 발단은 내게서 비롯되었으니 결자해지라고 내가 나서야 될 것 같아 중재 조건을 제시 하였다. 농사일이라고 해야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걱정이면 되도록 힘든 일은 하지 않고 일을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시원 할 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자기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농사일도 적당한 노동은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 했더니 아들은 어머니 건강 깨지는 날이 우리 집 행복 깨지는 날이니 건강에 유의하라면서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겠다며 삼십 만원만 주고 이십만 원은 내게 맡기기에 나중에 아내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 되었다.
아이들이 제 어머니 건강 걱정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같은 연배의 다른 이들에 비해서 몸 상태가 좋지 않을뿐더러 심혈관에 스텐트 시술이라는 것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사일도 밭에 풀 한포기라도 있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남들이 알면 손바닥 만 한 밭뙈기 가지고 별 소릴 다 한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겐 밭일을 하다가 혹시 변고라도 생길 가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썽이었던 그 고추에 진짜 말썽이 생겼다. 저녁 무렵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시들어 죽은 고춧대를 한 움큼 들고는 왜 고추가 이렇게 말라 죽느냐고 묻는다. 나도 글쎄 왜 그럴까 라며 모르겠다고 하였지만 내심으로는 며칠 전에 비료를 물에 타서 준 것이 화근이 아닌가 싶어 고추밭엘 나가보니 여기저기 잎이 마르고 시들어가는 것들이 보인다. 가뭄 뿐 아니라 더운 날씨도 계속 되고 있어 누구에게 들은 대로 물도 주고 비료도 주기 겸 비료를 물에 타서 주면 좋겠다 싶어 동력 분무기를 이용하야 포기마다 비룟물을 관수 하였는데 의도는 좋았으나 내용이나 방법이 잘못 된 것 같다는 생각에서 형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 하였더니 예상대로 비료를 너무 많이 탓을 뿐 아니라 뿌리에 너무 가까이 주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물을 주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일러주기에 아내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였더니 평생을 시골에 살면서 어떻게 농사도 지을 줄 모르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기에 애들이 이백 포기 만 심으라는 것을 사백포기 심었으니 반 만 죽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이젠 애들과 용돈 때문에 실랑이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니 잘 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염체 좋게 어디서 그런 넉살 좋은 소리가 나오느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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