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숨겨진 보물, 서원·만수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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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숨겨진 보물, 서원·만수계곡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7.04.27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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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은의 명소를 찾아서(4)
“금강의 발원, 자연과 역사를 만나는 서원계곡”
보은군 장안면 장안리에서 속리산으로 향하는 지방도505호를 따라 걷다보면 ‘금강 발원지 서원계곡’ 이라는 표지석을 만난다. 서원계곡은 속리산의 남서쪽 계곡을 말하는데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으로 흘러드는 삼가천이라 불린다.
이 서원계곡은 계곡의 입구에 넓은 들판을 이루었고 이 계곡의 초입이 바로 장안리와 개안리이다. 본격적인 계곡의 입구는 속칭 ‘북두문이’ 라 불리 우는데 이곳은 서원리와 장안리의 경계를 이룬다. 계곡이 동남으로 휘었다가 다시 서남류하는 곡류를 이루는데 남쪽으로 막아선 산으로 북에서 뻗은 가지능선이 들어가듯 생겨서 서쪽에서 동으로 계곡이 바라 보이지 않고 또한 계곡에서 서쪽으로 트인 벌판이 보이지 않는다.
장안리에서 서원리로 향하는 이 초입이 바로 ‘북두문이’ 속리산으로 향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을 입구를 말해주듯이 지금은 돌비석에 금줄을 친 흔적이 있으나 예전에는 목장승이 모퉁이에 서있다고 하니 가히 출입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모퉁이를 돌면 서원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상현서원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이 상현서원은 보은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충암 김정이 기묘사화때 화를 입은 뒤에 이 지방 사림들에 의해 삼년산성에 만들어져 삼년성서원이라 하였으나 인조때 “상현” 이란 이름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헌종13년(1672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서원리의 마을이름과 삼가천 계곡의 이름이 서원계곡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삼가천의 중심은 상현서원이었으며 이 서원이 위치해 있어 마을이름과 계곡이름이 모두 서원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서원마을을 벗어나자 좌측으로 범상치 않은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소나무는 흔히 ‘정부인소나무’ ‘암소나무’로 불리우는데 천연기념물 35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지정 명칭은 “속리 서원리의 소나무” 로 되어 있다. 이 소나무가 위치한 마을이 서원리이므로 “서원리소나무” 이며 자연부락명은 ‘안도리’ 이다.
이 소나무는 속리산 관문에 위치한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의 한 줄기로 곧게 자란 형태와는 달리 줄기가 두 개로 갈라져 “암소나무” 라 하며 정이품송과 수령이 비슷하여 정이품송의 부인 소나무 ‘정부인송’ 이라고도 별칭도 있다.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대부분 정이품송은 잘 알려졌지만 부인 소나무가 있다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지 못했으나 근자에 정부인송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서원리 소나무(정부인송)는 삼가천이 동쪽에서 흘러내리다가 안도리 마을 요철모양의 안쪽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황해동으로 흐르는 삼가천 감싸고 있다.
이 정부인송이 위치한 자리 역시 흔히 명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주변 지형과의 조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부인송 역시 마을 입구에 수호신적 성격의 서낭나무로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의 소나무라는 스토리텔링 만들고 있으며 정이품송이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매우 왕성한 생명력으로 일명 조선 소나무의 기품을 대표하는 소나무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수백년의 역사가 공존하는 서원계곡길은 시간을 잊고 떠나는 자연의 길이었다.
▲ 서원계곡내 상현서원.
▲ 속리 서원리 소나무(정부인송).



속리산의 숨겨진 신선의 마을 만수계곡
속리산면 삼가리 마을이 있는 좁은 호반길을 따라 2km 정도를 걷다보면 비룡저수지의 물길을 걷는 듯한 느낌마져 들어 제법 걷기 좋은 길이다. 좁은 도로의 한쪽은 비룡저수지의 맑은 물을 접하고 한쪽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산능선을 걷는듯해 주변 절경이 감탄을 연출할 정도다.
아침에 이 길을 걷는다면 자욱하게 내려앉은 물안개를 만날 수 있다. 비룡저수지 수면위로 내려앉은 자욱한 물안개가 자욱한 모습은 자칫 신선이 된 기분이다.
한참을 걷다보면 첫 번째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이 속리산면 삼가리이다. 이 삼가리는 본래 보은, 경상북도 상주, 문경으로 통하는 세 갈래 길이 있어서 삼거리라 불리다가 삼가리로 행정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저수지 호반길을 걷다가 이 마을 입구에 삼거리가 나온다. 보은에서 호반길을 따라 걸어온 길과 속리산 천왕봉으로 향하는 천왕봉 가는길과 경상도 상주, 문경으로 향하는 속리산 구병리로 가는 길, 진짜 삼거리였다. 삼가리의 엣 이름은 ‘이화동’ 이라고 불리웠는데 명장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수련할 때 이 마을 뒷산인 형제봉 위에서 오얏꽃이 핀 마을을 바라보다 장관에 감명을 받아 ‘이화동’ 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강 상류에 위치한 이화동은 도화, 만수, 구병리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삼거리가 변해 삼가리가 되었다는 마을에서 속리산 천왕으로 향하는 길로 향하다 보면 속리산의 외경(外境)을 감상할 수 있는 만수리, 구병리로 향했다. 삼가리 작은 고개를 넘자 삼가저수지의 물이 유입되는 다리를 만난다. 다리위에서 바라본 삼가저수지로 흐르는 물은 물반 고기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맑고 깨끗함을 보여주고 있다. 늦가을의 정취가 물빛에 잠겨있는 듯한 기분은 길을 떠나는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었다.
만수계곡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계곡으로 향했다. 만수리는 본래 ‘묘막리’ 였다고 한다. 조선 현종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임의백의 묘가 마을 뒷산에 생기고 마을부근의 산과 전.답이 모두 풍천 임씨 문중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임씨 문중에서는 그곳에 만세암이라는 절을 세우고 승려들에게 묘를 지키게 하였더니 그 뒤 암자는 불에 타버리고 차차 마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하며 마을 사람들은 임씨 문중의 전답을 경작하고 임야를 지키고 묘를 보살피게 되었으므로 묘막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1987년 군 조례에 의거 만수리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 만수리로 불리고 있다.
만수리로 들어가는 길은 계곡과 인접해 있어 이 계곡 물은 삼가저수지로 흐르고 있어 금강의 발원지를 따라 걷는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삼가천에서 삼가저수지에 이르는 4㎞의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만수리 마을은 주위의 우거진 숲과 깍아지른 듯한 바위와 물속까지 보이는 맑고 깨끗한 물로 여름피서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원래 세집만이 살던 마을이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와서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피앗재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리와 연결되는 고개이다. 이 피앗재 길을 끝으로 만수리의 끝이다. 피앗재를 뒤로 하고 되돌아 나오는 길 역시 지루함이 없이 맑고 청량한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상쾌한 기분마져 들었다.
▲ 만수계곡 소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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