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전통 고수, 드디어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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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전통 고수, 드디어 상품화
  • 송진선
  • 승인 1998.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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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겨 고추장 장인 강달순씨
한국인을 한국인이게 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 고추장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1년 중 좋은 날을 받아 장을 담는 풍습은 그 집안의 일년 중 하나의 행사일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장맛을 내는 비결은 집집마다 달라 어느 집에나 있는 장일지라도 그 맛이 천차만별인 것이 사실이다. 대청호 물이 마당 앞까지 들어오는 한적한 회남 남대문리의 보리겨 고추장은 다소 거친 느낌이나 독특한 향이 있고 맛이 담백해 입맛 없는 사람들에게 입맛을 찾아주는 맛있는 고추장으로 이름나 있다.

보리겨 고추장의 장인 강달순씨(61)가 시집오기 전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고추장 맛을 버리지 않고 35년간 전통을 고수, 편리함에 밀려 자칫 잊어버릴 수 있는 비법을 그대로 지켜와 전통식품으로 지정받았다. 200평은 족히 넘을 듯 싶은 집안에는 100동 정도 되는 장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한 눈에 보아도 장이 특이한가 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보리겨 고추장의 태동은 보리고개 시절로 넘어가야만 한다.

쌀이 없어 보리로 양식을 대신하던 대 보리를 찧으면서 맨 처음 나온 부산물은 소를 주고 그 다음 나온 것은 개를 주고 그 다음 나온 부산물이 바로 보리겨 고추장에 이용되었으며 보리쌀을 얻기 직전인 마지막 나온 부산물로는 보리겨 밥도 해먹었을 정도다. 찹쌀은 그나마 형편이 조금나은 집에서나 이용하던 것이기 때문에 보리겨는 사실상 가난의 상징일 수 있었다. 그나마 보리겨라도 있어서 고추장을 담을 수가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던 때였다.

보리고개 시절 꽁 보리밥을 찬 물에 말아 보리겨 고추장을 숟가락 총에 찍어 먹은 것이 반찬의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형편이 좋아져 어느 집에서나 찹살 얻기가 쉬워지자 맛이 거친 보리겨 고추장이 놓였던 상에는 결고운 찹쌀 고추장이 자리를 차지했으며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보리겨 고추장이 무엇이냐고 물을 정도로 보리겨 고추장은 어려운 시절 조상들이 먹던 음식으로 고서에 기록되는 역사로만 남겨지게 되었다.

강달순씨는 생활이 넉넉한 시절에도 찹쌀 고추장 대신 보리겨 고추장을 고집스럽게 담았다. 그리고 주위에 입맛이 없는 노인들에게, 병환중인 환자등에게 준 고추장으로 입맛을 찾았다는 칭찬에 용기를 내 살림에 보택 욕심으로 89년 대전역 앞과 대전 신흥동에서 좌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 여섯명, 그 다음에는 십수명 그다음엔 수십명이 구입, 회남 남대문의 강달순씨가 만든 보리겨 고추장은 이름을 얻기 시작했고 대전 중앙시장 식품점에서 주문판매에 들어갔으며, 서울 가락동 시장에서도 판매했는데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판매가 크게 늘어났다.

매년 빚에 허덕이던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해 자식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던 집안을 그 덕분에 일으켰고 막내 아들은 돈 걱정 없이 대학교육을 수월하게 시켰다. 장맛을 본 많은 업자들은 전망이 밝다고 판단, 동업을 하자고 강달순씨를 찾기도 했으나 허가가 없기 때문에 계속 미뤘다. 강달순씨는 동업하자고까지 제의해오는 것으로 보고 보리겨 고추장을 충북의 명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90년부터 식품 제조허가를 받기위해 수차례 행정기관을 찾았다.

그 때마다 들은 말은 “전라도 순창 고추장이 있는데 왜 하려고 하느냐”며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강달순씨는 “전라도 순창은 되는데 충청도는 안되는 이유는 뭐냐”고 따지고 “허가를 안해주면 장딴지를 이고 청와대까지 가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나 통하지 않았고 96년 가서야 겨우 전통식품으로 지정받아 보리겨 고추장외에 된장, 간장, 장아찌까지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강달순씨가 만드는 보리겨 고추장은 순수 재래식으로 큰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메주를 쑤고 잘 말려 발효시킨 후 메주와 보리겨의 비율을 잘 맞춰 숙성을 시킨다. 과거의 보리겨 고추장은 보리를 베는 시기였던 여름철에 만들 것이기 때문에 온도가 40도 이상되는 퇴비속에 파묻어 고추장을 숙성시켰다. 장맛은 바로 숙성시키는 것을 잘해야 맛이 살아나기 때문에 강달순씨만의 숙성방법이 있는데 아직은 밝히지 않고 있으며 맛을 비교하기 위해 시중 고추장을 먹어보았으나 자신이 만든 고추장의 품질이 월등하다고 판단, 우리 농산물로 만들면 판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앞으로 보리와 콩은 계약재배를 시도할 계획인데 대청호에 물이 빠지는 겨울부터 장마전까지 보리를 많이 심어 구입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고 콩의 경우도 회인지방에 잡곡생산량이 많아 역시 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집스런 외길 장인정신이 빚어내는 보리겨 고추장은 이제야 빛을 발해 보은의 전통식품이 아닌 대한민국의 전통식품으로 이름이 남게 돼 뿌듯하다는 강달순씨는 남편 양해진시와 4남1녀의 자녀 중 둘재 아들과 함께 보리겨 고추장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 아들에게 전수시켜 보리겨 고추장을 우리나라 장의 족보에 오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달순씨는 고추장이 잘되면 다시 전통주에 도전하겠다고. 조상의 슬기로움이 배어있는 『전통』을 더 잊기 전에 명문화시키겠다는 사명감이 하마터면 사장될 뻔했던 전통(보리겨 고추장)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게해 61세인 그녀의 나이만큼이나 숙성된 장인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문의전화 0433-42-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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