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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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소식
  • 이영란 (청주사직초등학교 교장)
  • 승인 2016.10.13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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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제비가 오면 반가운 계절의 소식을 듣고, 평범한 날에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만남의 반가움을 표현한다.
오전 내내 밀린 집안일을 마치고 한가한 오후에 집안을 울리는 전화 벨소리가 고요함을 깨우며 묵직한 남자 소리가 들린다. 생소한 소리에 약간은 겁에 질려 통화를 하던 중 너무나 반가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전화기 저 편에서 들리는 굵직하고 톤이 낮은 소리는 30년 전의 앳된 5학년개구쟁이 소리가 아닌 사회생활을 오래 한 믿음직한 목소리였다. 5학년 담임을 한 후 헤어진 제자가 20여 년 전 멋진 군인이 되어 스승의 날에 찾아와 중·고등학교 때의 학교생활과 대학 진학의 어려움을 이야기 한 후 자기의 뜻을 펼치기 위해 소식이 끊어진지 참 오랜 만의 일이다. 벌써 가정을 꾸려 중학생과 초등학생의 자녀를 두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나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손아래 사람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더 실감할 수 있으며, 어느 날 문득 나타난 성장된 모습은 나의 지난 생활을 되씹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처음 발령 받아 3학년을 담임했을 때는 정말 행복하고 선생님이라는 권위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고무줄놀이와 줄넘기를 하면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 시간에는 열정이라는 무기를 갖고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아이들보다 더 기다리던 시절의 여학생이 엄마가 되어 자녀들과 찾아 왔을 때의 모습은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반가웠다. 지금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고3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유치원 선생님이 된 야무진 여학생은 같은 길을 가면서 종종 소식을 듣고 어려움을 서로 이야기하며 동행의 길을 걷고 있다. 나도 병설유치원이 설립되기 전 2년 동안 2학년 수업을 마친 후 유치원생들과 생활 한 적이 있다. 너무 귀엽고 착한 아이들이지만 모든 행동에 시범을 보이고 설명하기에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생과 2년 보낸 후 학년이 내려갈수록 교사의 길이 더 어려움을 깨달았으며, 그 길을 묵묵히 가는 제자 모습이 자랑스럽다.
지금은 소아과 의사가 되어 아기를 돌보고 있는 여학생은 늘 말없이 자기의 일을 잘 하며 항상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학급의 궂은일을 솔선수범하면서 불평 없이 행동하던 학생이었다.
그런가 하면 머리는 명석하고 농사짓는 부모님 보호아래 학교생활은 즐겁고 긍정적으로 하였으나 가끔은 약속을 어겨 야단을 맞았던 놀기 좋아하고 의리 있던 머슴아들과 교사의 말 한마디에 삐죽이가 되어 그 서운함을 풀어 주려고 무던히 애썼던 계집애들은 사회의 곳곳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것을 보면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교직은 참 어렵고, 너무나 힘들고,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 방향 잡기도 어려운 직업이다. 더구나 요즈음 같이 한 두 명의 자녀를 둔 가정에서 귀엽고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에게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교육은 더욱 힘들다. 회사원은 자기의 목표를 위해서 조직적인 계획과 의사소통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일반 공무원은 어른들만을 상대로 하기에 일처리가 쉽게 해결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교직은 어른(학부형)과 동료와 꿈을 향하여 자라는 아이들이 있기에 하나의 문제도 여러 측면에서 검토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열정(?)에 도취되어 아이들과 나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던 교사생활이 그립기도 하다. 반가운 소식에 흘러간 세월을 반추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제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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