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日(춘일) / 아계 이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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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춘일) / 아계 이산해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6.10.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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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향 머금은 번안시조【108】
가을걷이는 겨우살이에 충분하여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래서 겨울은 휴면기이고 다음 농사를 짓는 준비기간이다. 이는 농사가 넉넉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춘궁기 또는 보릿고개란 말이 있다. 겨울곡식을 다 먹고 나면 춘분(春分) 이후 해가 길어지면 봄에 먹을 곡식을 걱정해야 된다. 이때를 넘기기가 가장 어렵다. 자연은 봄을 재촉하여 장관을 이루지만 시름에 겨운 서민들은 해 길어짐을 원망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비온 뒤 꽃가지는 낮은 담 뒤덮었고
작은 못물 새로 불어 원앙새가 멱을 감네
시름에 겨운 사람들 해 길어짐 원망한다.
雨後花枝覆短墻 小塘新漲浴鴛鴦
우후화지복단장 소당신창욕원앙
愁人無意鉤簾看 只怨春來日漸長
수인무의구렴간 지원춘래일점장

어느 봄날(春日)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다. 156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그 뒤 부수찬·대사성 등을 지냈으며 대사헌·우찬성·병조판서 등을 거쳐 1588년 우의정이 되었는데, 이때 동인이 남인·북인으로 갈라지자 북인의 영수로 정권을 잡았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비 온 뒤에 꽃가지는 낮은 담을 뒤덮었고, 작은 못물 새로 불어 원앙새가 멱 감구나. 시름 잠긴 사람은 발 걷고서 보지를 않고, 봄 들어서 해가 점점 길어진 걸 원망하구나]라는 시상이다.
아계는 서화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선조 대의 조선 팔문장의 한 사람으로 알려 진다. 아계의 부친이 나라의 사신으로 중국 산해관(山海館)에 투숙한 적이 있다. 그 때 부인과 동행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잠자리에 드는 꿈을 꾸었다 한다. 그 꿈은 집에 있던 아계의 모친과 똑같은 꿈을 꾸었다. 그래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이산해라고 지었다 한다.
시인은 비 온 뒤에 축 쳐진 꽃가지는 나지막한 담 위를 뒤덮으니 힘없이 보였을 것이다. 그런 가운에 원앙새 한쌍이 부지런히 멱을 감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시름에 잠긴 사람들은 구경하지도 못하고 보릿고개 때문일까 배고품을 달래기 위해 해가 길어짐만 원망하고 있을 그리고 있다.
화자는 비 맞은 꽃가지는 낮은 담을 뒤덮고 한가한 못물에 원앙새가 멱을 감는 봄날의 퐁경과 먹고 살기에 급급한 필부필부들은 이런 자연 현상을 보지 못하고 길어진 해에 보릿고개 넘길 일을 근심하면서 봄을 원망하고 있음을 표출한다.
【한자와 어구】
雨後: 비 온 뒤. 花枝: 꽃 가지. 覆: 덮다. 短墻: 낮은 담. 小塘: 작은 못물: 新漲: 새로 불다. 浴: 목욕하다. 鴛鴦: 원앙새.
愁人: 시름에 잠긴 사람. 無意: 보지 않다. 뜻하지 않다. 鉤簾看: 주렴을 걷고 보다. 只: 다만, 怨: 원망하다. 春來: 봄이 오다. 日漸長: 해가 점점 길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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