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7】
인적인 뚝 끊긴 밤이 되면 많을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슬픔도 기쁨도 이 시간에 회상하게 된다. 개는 짖어대고 닭은 새벽이 정적을 흔들어 댄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는 어찌 그리 잠못 이루는 밤을 서성이게 하는지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별들도 곤한 잠에 취해 있는데 바람과 소나무는 잠도 자지 않았는지 정자를 찾았던 주빈을 생각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송강정을 찾았던 주빈은 이런 때를 생각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낙엽은 사립문을 살며시 가리는데
바람과 소나무 어울려 밤 깊도록 노래하네.
明月在空庭 主人何處去
명월재공정 주인하처거
落葉掩柴門 風松夜深語
락엽엄시문 풍송야심어
바람과 소나무는 밤 깊도록 소리를 내네(松江亭)라고 제목을 붙이는 오언절구다. 작자는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다. 윤선도·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1580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강원도에 머무르면서 [관동별곡]과 시조 16수를 지었다. 1585년부터 4년간 고향인 창평에 은거하면서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지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밝은 달이 빈 뜰을 비추는데, 주인은 어느 곳에 갔는가? 낙엽은 사립문을 가리고, 바람과 소나무는 밤 깊도록 소리를 내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의 제목을 직역하면 [송강정에서]로 번역된다. 글쓴이가 만년에 그의 정자 송강정을 지어 놓고 시간을 내어 여기에 올라 시를 지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이 이 정자의 주인이면서 밝은 달이 빈 뜰을 비추고 있다고 하면서 주인은 어느 곳으로 갔는가 하고 반문한다.
이 같은 반어법은 시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곧 시인 자신이 묻고 시인 자신이 대답하는 꼴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이런 방법을 원용했다. 시적인 주위 분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화자의 입을 빌은 시인의 시상은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이 사립문 앞으로 가리면서 오는 손과 머물러 있는 주빈의 갈 길을 붙잡고 있다는 것으로 표현했다. 북풍을 배경 삼아 있는 송강정엔 바람이 불고 있는데 그에 맞춰 밤 깊도록 소나무가 소리를 낸다고 했다.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고 했듯이 경(景)의 정(情)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보이는 독특한 시인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한자와 어구】
明月: 밝은 달. 在: 있다. 空庭: 빈 뜰. 빈 정원. 主人: 주인. 何處去: 어느 곳으로 갔나. [何]로 인하여 의문문임.
落葉: 낙엽. 掩: 가리다. 柴門: 사립문. 風松: 바람과 소나무. 夜深: 밤이 깊도록. 語: 말하다. 여기서는 ‘소리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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