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속에 새로 나온 나비 : 春雨新蝶 / 김청한당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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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속에 새로 나온 나비 : 春雨新蝶 / 김청한당 (여류시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6.23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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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5】
봄나비가 봄의 전령이 되는 것처럼 꽃에도 앉아 보고 잎에도 앉는다. 서로 꼬리를 잡아 보려고 제법 술래잡이하는 모습도 본다. 사람을 조롱하듯이 하늘을 날아 솟구치다가 눈앞에 나타나 약을 바짝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봄비를 만났다. 어떤 녀석은 그늘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봄비의 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뛰기도 한다. ‘봄비 그것쯤이야’ 하면서 제 날개 젖은 줄도 모르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雨新蝶(춘우신접) / 김청한당
봄 나비 벌써 나와 떼 지어 날아다니고
보슬비 흠뻑 맞고 어지러이 난다나요
날개가 젖는 줄 모르고 봄바람에 춤춘다.
新蝶已成叢 紛飛細雨中
신접이성총 분비세우중
不知雙翅濕 猶自舞春風
부지쌍시습 유자무춘풍

봄비 속에 새로 나온 나비[春雨新蝶]으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 김청한당(金淸閒堂: 1853∼1890)은 고종 때의 여류시인이다. 저서로 [청한당산고(淸閒堂散稿)]가 있어 애송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봄 나비가 벌써 떼 지어 나네요, 보슬비 맞으며 어지러이 나네요. 날개가 젖는 줄도 모른 채로, 봄바람에 저절로 춤이 나네요]라는 시상이다.
어느 집 뜰이어도 좋다. 새봄이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그 보슬비 속을 나비들이 춤을 추며 날고 있다. 보슬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저 봄이 좋고 봄비가 좋다.
시인은 날고 있는 나비를 보고 있다. 물끄러미 보다가 걱정스러워 묻는다. ‘네 날개가 젖지 않았니?’ 한 나비가 춤추다가 응석을 부리는 말투로 대답한다. ‘날개쯤야 괜찮아요?’ 여인이 다시 묻는다. ‘그렇구나? 날개가 젖으면 많이 힘이 들텐데?’ 나비가 잠시 날개를 접으며 말한다. ‘힘은 들지요. 그러나 우리 봄나비는 봄 뜰을 날며 춤추는 것이 좋아요. 그러니까 봄의 뜰을 떠나서는 우리의 삶이 있을 수 없어요.’ 나비는 다시 날며 춤추기 시작한다.
화자는 다시 날며 춤추는 봄나비를 바라보다가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맞아, 날개 젖는 것이 두려워 삶을 포기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중얼거린다.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고. 그 삶이 힘찬 것이 되던가, 아예 맥 빠진 것이 되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달려 있다고. 봄의 뜰이라고 늘 봄볕이 밝은 것은 아니다. 비 좀 맞더라도 기죽지 말고 신나게 살자. ‘우린 폭풍우도 견딜 수 있으니’라고 말하면서.
【한자와 어구】
新蝶: 봄나비. 已: 이미. 成叢: 떼지어 다니다. 떨기를 이루다. 紛飛: 어지러이 날다. 細雨中: 보슬비가 내기는 가운데.
不知: 알지고 모른다. 雙翅濕: 두 날개가 젖다. 猶: 오히려. 自舞: 저절로 춤을 추다. 春風: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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