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믿음이라는 초심 잃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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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믿음이라는 초심 잃지 말아야...”
  • 나기홍 기자
  • 승인 2016.06.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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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이사람 - 정도경영으로 건설문화 선도하는 ‘대명21 김명회 대표’
한동안 TV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시청율 17.3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검찰 내 비리를 견디지 못하고 내부 고발자가 된 후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변호사가 되어 정경유착이라는 썩은 고리를 끊어나가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로 정치의 허구성을 고발하며 정도경영이라는 기업의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 때마침, 공정하고 올바른 정도경영은 물론 끊임없는 가치창조로 내일의 건설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수한면 소계리 출신의 김명회(54) 대명21 대표를 만나 그가 지향하는 기업의 책임과 역할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시골청년 김명회, 건설업에 뛰어들다
김명회.
그의 고향은 보은군 수한면 소계리다.
그는 고향보은에서 수한초와 보은중을 졸업했다.
보은중 28회로 63년생 동창들은 모두 그의 친구들이다.
“김종희, 임정빈, 박장호, 이우범, 정구호 등등 다 말하려면 한참 걸린다”며 몇몇 친구들의 이름을 거론한다.
유유상종이랄까? 하나같이 열심히 살아가며 나름대로 사회적 역할을 다 하는 사람들로 김종희는 현대자동차 보은영업소장이고, 임정빈은 농림식품부 정책국장이고, 박장호는 한우를 사육하고 있고, 이우범은 옥천경찰서장이고, 정구호는 전남드래곤즈 홍보마케팅팀장이다.
이 친구들처럼 김명회 대표도 부단한 노력으로 종합건설사인 (주)대명이십일을 창업해 연평균 수주액 500억 원이 넘을 정도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중학교를 마친 그가 청주로 나간 것은 좋은 학교로의 진학을 위해서였고 부모님은 보은에 계시고 자신만 청주로 나가 자취를 하면서 청주고와 충북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90년 28세의 나이로 토목을 전공한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인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대기업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꿈을 이룬 것이다.
천성이 성실하고 근면했던 청년 김명회는 동료와 선배들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다. 짧은 시간에 과장을 거쳐 차장까지 승진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02년, 돌연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인 현대건설을 그만뒀다. 입사 12년만이었다.
그는“ 차장까지는 굉장히 빨리 성장을 했는데 지방대를 나와서 대기업에 근무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서울대, 연. 고대 나온 친구들이 윗선을 꽉 잡고 있는데 나는 끌어주는 선배도 없고, 오히려 후배들을 끌어줘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답답한 일도 많고 한계에 부딪히는 일도 많아져 여기서는 더 이상 미래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로 현대건설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세상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더라
2002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김 대표는 그 해에 개인사업자로 건설사를 창업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배우고 경험한 노하우에 힘입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고 적지 않은 돈도 벌었다.
3년째 되던 2004년 김 대표는 욕심을 내어 사업체를 개인회사에서 법인으로 전환을 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그러나 법인전환 3년이 채 안되어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12년간 현대건설에 다니면서 모았던 돈도, 개인사업자로 일하면서 마련한 16억원짜리 빌딩도, 여기저기 마련했던 금쪽같은 부동산까지 모두를 잃었다.
“현대건설에서 나와 건설업을 시작했는데 몇 년 만에 싹 털어먹고 정리를 해보니 마이너스 2억 원 이더라고요. 이때 참 허탈했어요. 그래서 현대건설에 다시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못갔습니다”라는 말로 절망적이었던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신용으로 은행에 개설해둔 계좌가 6억 원을 쓸 수 있더라고요. 2억을 상환하고 4억을 가지고 다시 도전해 여기까지 왔는데, 사실 마이너스 4억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기에 도전한지 12년, 이제는 연평균 공사수주액 500억 원 이상에 향후 3년간의 일거리를 확보해 놓은 상태의 건실한 기업으로 자리했다.
그는 실패를 거울삼아 12년을 열심히 일하면서 그 사이에도 무역도해보고, 유통업도 손대보고 하다가 손실도 있었다고 한다.
사업이 좀 된다 싶어 다른데 눈을 돌리면 어김없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김명회 대표는 “이제는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고 천천히 하고 있다. 사실 유통사업이나 무역업이 메리트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분야의 생리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면서 “건설업은 잘 아니까 앞으로는 건설분야에서 대기업과 소기업의 틈새시장을 공략해 사업을 끌어나가는데 중점을 두고 직원들과 멀리 함께 가려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주)대명이십일의 탄탄한 기술력과 전문성
(주)대명이십일은 크게 건축사업, 주택사업, 토목사업, 플랜트사업, 조경 및 시설물관리사업등 5개 분야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대명이십일은 (주)대명산업개발, (주)대명투웨니퍼스트, (주)대명이십일 레저 등의 가족사를 두고 있다.
대명이십일은 규장각 사옥 신축공사, 당산동 새한지오텍 사옥신축공사, 서교동 아칸반스튜디오 신축공사 등 80여건의 크고 작은 건축사업을 진행한데 이어 등촌동 오피스텔신축공사 1단지, 2단지, 3단지 건축사업을 진행해 분양을 완료하고 도봉동 오피스텧 신축공사 1단지와 2단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택사업에서는 공항동 도시형생활주택 신축공사, 독산동 도시형생활주택 신축공사, 서교동 도시형생활주택 신축공사, 송정 올림푸스 신축공사를 비롯해 30여건의 아파트를 건축했으며 방화동 주상복합 신축공사, 신월동 주상복합 신축공사, 서교동 다세대주택 신축공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대명21은 아파트 건축 시 과거에는 올림프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투웨니퍼스트라는 브랜드로 아파트를 건축하고 있다.
굵직한 토목사업들도 대명이십일의 손을 거쳐 갔다.
4.19길 확장공사, 하이닉스 옥외관로 토목공사, 목동신시가지 오수관거 교체공사 등 15건의 토목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것은 물론 5년에 걸친 4대강지류 경주 형산강 공사를 준공하고 현재는 4대강지류인 합천 황강공사를 진행할 정도로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력이 탄탄하게 갖춘 것이 (주)대명21이다.
이외에도 10여 군데의 현장이 가동되고 있을 만큼 김 대표가 이끄는 대명이십일의 기술력은 인정받고 있다.
김명회 대표는 “대명이십일이 꾸준히 성장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50여명의 직원들이 기획, 설계, 공무, 관리, 현장 등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준 결과로 생각하며,이 분들과 같이 서두르지 않고 멀리 함께 가려 한다”는 말로 직원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표했다.

초심 잃지 않고 고향생각하며 살 터
김 대표는 성공은 물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항상 겸손해야 하고, 잘 해야 하고, 적이 없어야 한다. 사업을 키우다보면 우연치 않게 적이 생기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 친구 초심을 잃은 것 아냐? 너무 잘 나가는 것 아냐? 하는 말이 나오면 얼마안가 어려워지고 사업에 실패 것을 많이 봐왔다”는 말로 늘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변칙을 쓰지 않는 정도경영만이 발전의 동력이 된다는 소신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5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도 자기계발과 자기관리에 충실한 학구파 CEO다.
사업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한 것은 물론 신용보증기금에서 설립한 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가 주관하는 기업인조찬모임에 나가 특강을 듣는 등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쓰고 있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매월 한 번씩 기업인 6~700명이 인터콘티네탈호텔에 모여 아침 5시 30분부터 유명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듣고 이어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들과 대화도하고 토론도 하는데 여기서 정말 큰 자극과 감동을 받는다”고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베이비부머 세대지만 친구들이 무우장아찌를 도시락반찬으로 싸올 때 저는 그래도 멸치나 오뎅볶음을 싸왔고 청주에서 자취를 할 때도 할머니께서 밥과 빨래를 해주셔서 큰 고생은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순전히 부모님을 잘 만난 덕”이라며 부보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비록 학업을 위해서였지만 고향을 떠난지 어언 37년, 그사이 아내(연귀숙 50)를 얻었고, 이화여대와 건국대를 다니는 딸 둘도 얻었지만 그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재경보은군민회에도 나가고,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면서 사회와 고향을 외면하지 않지만 분에 넘치지도 않는다.
멋지고, 착하고, 능력 있는 아들의 지속적인 발전을 고향 수한면 소계리에 계시는 그의 아버지(김재학 77)와 어머니(정정자.74)는 오늘도 보은군민들과 함께 응원하고 있다.
/나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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