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이날 기념 소체육회에서 <어린이헌장>을 들고 단 위에 섰다. 문구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어린이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세세히 설명하였다. 자식 기 죽일까봐 올바른 도리를 가르칠 엄두도 못 내는 젊은 부모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를 멀찌감치 서서 바라만 볼 뿐, 나서지 못하는 노인들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야단을 쳐서 바로가야 하는 진실 앞에서,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상한 시대에 우리 모두 살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난투극을 보면서도 분노하여 말리지 못하는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은 점점 의욕과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 난 간혹 말한다 ‘이 시대는 골마루를 뛰어 다니고 난투극을 벌이는 어린 양들에게 큰 소리 한번 쳐주는 교사가 참 스승이라고~~~’
적반하장 사태가 비일비재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 방향감을 잃은 채 노 젓기를 우왕좌왕 해대는 젊은이들과 지팡이를 휘두를 용기와 위엄을 잃은 어른들이 공존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루터기 노릇을 해야 하는 어른들이 사라졌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지만, 어쩌면 너무도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잘못 되어가는 현실을 확실히 알면서도 훈계와 불호령을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막상 뿌리이고 중심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멀찌감치 젊은 사람들 눈치만 보는 거꾸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어느 집이나 그 가계에서 나름대로 한권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콩 한 개도 나눠 먹고 쑥버무리와 보리개떡 감자떡으로 연명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이 땅에 풍요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들이 그분들이다. 맨주먹으로 논밭을 일구어 자수성가하여 자식과 가정을 위해 평생을 바쳤건만, 핵가족과 개인 이기주의 푸른 서슬 앞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1번의 자리를 미련 없이 내어주고 하위순으로 밀려났으니 구경만 하는 게 상책이라는 우수개소리가 농담에 그치기를 바랄뿐이다.
젊은이들은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나 마음의 그림자를 다스려 양심이라는 밝은 양지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세상을 내다보며 나아갈 길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뿌리를 의식해야 한다. 화들짝 피어나는 꽃과 열매에만 눈길을 보내지 않고, 그 꽃을 피워내는 근간인 뿌리에 눈길을 주어야 할 것이다. 비바람에 뿌리가 뽑히면 그 화려하고 풍요로운 꽃과 열매, 즉 현존의 모든 상황들이 물거품이 되는 줄을 미리 짐작해야 할 것이다. 뿌리에게 돌려야 할 감사와 은혜와 영광을 엉뚱한 존재에게 돌리는 이상한 해프닝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우리 모두 각성해야 할 오월이 지나간다.
밀물이 밀려오듯이 누구에게나 서서히 다가오는 노인삼반(老人三反)을 예측하는 지혜와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삶을 엮어서 모든 어른들에게 어여쁜 그림자 노릇으로 보답함이 마땅하다. 그리하여 양지를 찾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을수록 이 땅에 밝은 양심의 세상은 활짝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 역시 내일의 역사를 이어갈 새 뿌리에게 세상의 도리와 원칙과 근원을 가르치는 것이 의무라 할 수 있다. 소중한 씨앗 한 알을 모래밭 자갈밭이 아닌 옥토에 뿌려주어, 어떠한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나서, 아름다운 꽃과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책무성을 발휘함이 마땅하다. 자식이나 젊은이들에게 든든한 그늘막 노릇을 해 주는 풍토조성에 모두 앞장서야 할 지금이다.
젊은이는 진정성 있는 어른의 부재 이유를 고민해야 할 것이며, 어른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젊은이의 변명을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늘막과 그림자의 관련성에 비유하면서, 사랑과 존경으로 서로를 지켜줘야 할 지금이다. 우리 모두가 온고지신의 커다란 맥을 상기하면서,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짚고 나가야 할 5월이 지나가고 있다. 실핏줄까지 탱탱해져서 진록의 녹음으로 만삭이 된 커다란 느티나무 사이에서 가정의 달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 아래로 나름대로의 결실을 거두어야 할 감사의 달 5월이 쏜살같이 빠져 나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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