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에서 : 狎鷗亭 / 고봉 기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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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에서 : 狎鷗亭 / 고봉 기대승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4.1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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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7】
시인이 살았던 당시의 압구정과 현대에 개발된 압구정을 상상으로 비교해 보라. 공간은 그대론데 시간이 흐르면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변화를 실감한다. ‘잠실’도, ‘강나루’도 마찬 가지겠거늘… 시인이 살았던 당시만 해도 정자부근엔 상당한 개발이 진행되었음을 넌지시 알게 한다. 압구정 한명회가 온갖 영화를 누릴 때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던 명승지였음을 회고한 다음에 백년도 못가는 인간도 그렇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鴨鷗亭(압구정) / 고봉 기대승
거친 숲에 엉킨 풀이 높은 언덕 뒤덮고
당시를 생각하니 명승지임 알겠구나
백년도 못사는 인간사 안개풍경 머리에 든다.
荒榛蔓草蔽高丘 緬想當時辦勝遊
황진만초폐고구 면상당시판승유
人事百年能幾許 滿江煙景入搔頭
인사백년능기허 만강연경입소두

압구정에서(狎鷗亭)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으로 조선 중기 때의 성리학자다. 나주 출생으로 1549년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사관이 되었다. 사가독서하고, 주서를 거쳐 사정으로 있을 때, 신진사류의 영수로 지목되어 훈구파에 의해 삭직되기도 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거친 숲에 엉킨 풀이 높은 언덕 뒤덮어, 아득히 당시를 생각하니 명승지임을 알겠다. 인간의 한 백년 그 얼마나 되는가, 강에 가득한 안개 풍경, 번잡함이 머리에 든다]라는 시상이다.
기대승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여 문학에 이름을 떨쳤을 뿐 아니라, 독학으로 고금에 통달하여 31세 때 [주자대전]을 발췌하여 편찬할 만큼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특히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을 주제로 논란을 폈던 편지는 유명하다. 이것이 유학사상의 기저를 이루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시인은 압구정에 올라 거친 풀을 바라보면서 시상을 떠올린다. 압구정은 세조 때에 갖은 영화를 누렸던 칠삭동이 한명회(韓明澮)의 호다. 시인보다 150여년이 앞선 정객 압구정을 떠올리며 당시의 명승지였음을 회상한다. 한 백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안개 풍경이 번잡한 인간사가 머리를 든다고 서회한다. 화자는 분명 단종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그를 은근하게 질타하면서 저주하는데 인색하지 않는 태도를 시문을 통해 질타한다.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어찌 안개풍경 아옹다옹 얽히듯이 그 때 그 일들을 빗대고 있다.
【한자와 어구】
荒榛: 거친 잡목 숲. 蔓草: 엉킨 풀. 蔽: 뒤덮다. 가리다. 高丘: 높은 언덕. 緬想: 아득히 생각하다. 當時: 당시. 辦勝遊: 명승지임을 알다.
人事: 인간세상. 百年: 백년. 能幾許: 얼마나 되겠는가. 滿江: 강에 가득하다. 煙景: 안개 풍경. 入搔頭: 번잡함이 머리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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