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운을 놓으며 : 原韻 / 강정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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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운을 놓으며 : 原韻 / 강정일당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3.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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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5】
나무도 매미도 살아가는 한해살이가 있다. 봄이 오면 잎이 돋고 여름이면 무성했다가 가을이면 열매를 남기고 차가운 겨울을 맞는다. 한 인간의 삶도 이와 같은 이치다. 뒤돌아보면 모두가 허무한 것을 삶의 끈이 얼마나 무겁고 큰 것인지 그것을 부여잡고 바등거리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2005년 7월 문화광관부에서 선정한 문화의 인물이었던 한 시인이 인생 역경을 원운(原韻)으로 표기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原韻(원운) / 강정일당
새봄이 돌아오니 꽃이 한창 피어나고
해 지니 사람들은 차츰 씩 늙어가네
탄식해 무엇하겠는가, 착한 길만 갈뿐인데.
春來花正盛 歲去人漸老
춘래화정성 세거인점로
歎息將何爲 只要一善道
탄식장하위 지요일선도

처음 시운을 놓으며(原韻)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 강정일당(姜靜一堂:1772∼1832) 조선 순조 때의 여류 시인이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그녀는 시문, 서화에 능했다. 성리학, 경술에도 밝았으며, 글씨는 해서를 잘 썼고, 재덕을 겸한 비범한 여성으로 평가하고 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봄이 오니 꽃이 한창 피고, 해가 가니 사람이 차츰 늙도다. 탄식한들 끝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다만 착한 길을 갈 뿐이로다]라는 시상이다.
강정일당은 남편과 학문적 자세를 가다듬는 편지를 나누었으니 한 남자의 아내라기보다는 학덕인의 면모를 엿본다. 옥은 옥이고 돌은 돌이듯이 남이 알아주든 말든 실덕에 힘써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땅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上不愧干天下不愧干地)고 역설했다. 안타까운 것은 일찍이 5남 4녀의 자식을 두었는데 1년 걸려 모두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 한이 오죽했겠는가.
시인은 자연현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듯이 사람도 차츰 늙어감을 탄식한다. 봄이 와서 한창 꽃이 피는 것은 젊었을 때이련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감을 사람이 나이들어 늙어감으로 시상을 일으킨다. 늙어감을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만 저물어가는 나이지만 착한 길을 가야겠다고 했다.
화자는 저물어가는 인생의 길목에서 긴 여정을 회상하고 있다. 9남매를 모두 보내고 한 많게 살았던 인생 역경을 다 머리에 떠 올린들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화자 자신이 독실하게 성리학자의 길을 걸었듯이 남아 있는 그 날까지 그렇게 바르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담는다.
【한자와 어구】
春來: 봄이 오다. 花正盛: 꽃이 한창 피다. [正]은 ‘바로’의 뜻으로 쓰임. 歲去: 세월이 가다. 人漸老: 사람은 점점 늙다.
歎息: 탄식하다. 將: 장차. 何爲: 어찌 하겠는가. 只: 다만. 要: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필요로 하는 건. 一善道: 하나의 선을 향하는 길을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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