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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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까치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 승인 2015.12.3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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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작, 카작, 카작’. 날카로운 철음을 내며 까치가 운다. ‘짤캉, 짤캉, 짤캉’ 반가운 엿장수가 가위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이윽고 엿장수는 가위소리에 맞추어“영감할마이 싸우다가 대꼬바리 부러진것 엿준다! 엿준다!”하고 선동한다.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고무쪽이 조금 붙은 헤어진 지게다비, 깨진 요광, 돼지털 한줌 등을 들고 뛰어간다. 어릴 때 고향에서의 모습이었다.
여우도 죽을 때는 굴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했던가? 고향을 떠난지도 벌써 반세기를 넘었건만 아직도 틈만 나면 고향 어릴 때의 기억이 회상되곤 한다. 하찮은 산골 하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곧바로 고향을 떠나 바닷길 수만리를 노니다가 고향하천으로 돌아가서 죽는다. 이것을 ‘회귀본능’이라고 한다는 설명만 듣고 책장을 넘겨 버리자니 뭉클한 마음과 함께 아쉬움이 여운되어 남는다.
내 어릴때 고향에는 그리운 부모형제와 친척어른들이 있었고, 정자나무(느티나무) 아래에는 흰옷 입은 친지들이 모여앉아 도란도란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그런 모습을 찾을 길 없고, 세상도 참 많이 바뀌었다. 모두들 편리함만을 찾아 농촌을 탈출하여 도시로만 몰렸고 고향은 텅 빈 마을이 되고 말았다. 다만 힘없는 늙은이들만 남아서 등굽은 노송과 까치와 더불어 선산이 있는 고향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고향을 찾을때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까치가 고맙다. 까치는 텃새로서 자기가 사는 터를 벗어남이 없이 한 곳에서만 산다. 그 이유는 까치는 날개가 짧아 장거리 비행이 불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까치는 동네사람의 일원이다. 까치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떠나도 텅빈 고향마을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새이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까치를 보면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친다. 까마귀만 보았지 까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도 일왕이 사는 왕궁 하늘 위를 빙빙도는 수많은 까마귀 떼를 보았으나 어느 지역에서도 까치는 보지 못했다. 까마귀는 까치보다도 몸집이 훨씬 크고 머리도 영리한 놈이다. 저승사자 같이 온통 검은 도포를 둘러쓰고 컴컴한 목구멍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가다듬은 목소리로 “까악 까악”하고 우는 울음소리는 음흉하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 사람도 이쪽 이야기는 모두 다 듣고, 자기는 도포자락 한자락을 깔고 목청을 가다듬어 말하는 그런 사람은 심히 불괘하여 경계하게 된다. 또,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는 새다. 동네에 초상이 났을 때 까마귀가 운다고 하여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새로도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까치에게서는 까마귀 같은 음흉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 몸 색깔만 봐도 검은 부분과 흰 부분이 깨끗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흑백이 분명하다. 그 울음소리도 날카로운 금속성으로 의사전달이 확실하다. 까치의 울음소리에서는 노회한 정치꾼들의 우물쭈물하는 속임수 같은 어떠한 가식도 보이지 않는다. 표리가 없고 분명하며 진실성이 있어 보인다. 가슴과 가슴을 열고하는 대화라야 믿음과 진실성이 있는 법이다. 분명, 까치는 사람들과 가까운 새다. 낯선 사람이나 동물이 나타나면 동네개처럼 짖어대며 경고를 한다. 일종의 경계경보이다. 그 경보는 늑대같은 산짐승과 산적이 출몰하던 옛날, 산길을 걷는 사람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미리 대비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까마귀는 사람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새일 뿐이다. 까치가 사람에게 친근한 새인 반면에 고향에서 자주 본 까마귀는 그저 ‘가깝고도 먼 이웃’일 뿐이다.
까치는 새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도 인식된다. 낯선 손님이 나타나서 까치가 짖는 것이겠지만, 까치가 짖으니 손님이 온다고 역으로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까치가 짖으면 동네 사람들은 오늘 누가 올려나 하고 궁금해 하기도 한다.

오늘도 고향까치는 높은 가죽나무 꼭대기에 올라앉아 오는 사람, 지나는 짐승을 감시하며 내 고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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