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보며 읊음[1] : 自詠 / 송암 권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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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보며 읊음[1] : 自詠 / 송암 권호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5.12.1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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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3】
흔히 남의 잘못은 잘 들추어 말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것을 잘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는 일은 어렵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왜 그런가? 내 잘못이 너무 컸구나.’하면서 자기를 되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기를 되돌아보고 있다. 벼슬에 임명되었어도 한사코 뿌리치고 외딴 곳에서 혼자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읊었던 율시 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自詠(자영)[1] / 송암 권호문
모난 성격 홀로 있어 고상함을 지키고
텅 빈 골짜기에 집을 짓고 혼자 사네
숲속엔 새소리 맑고 꽃잎 쌓인 섬돌위엔.
偏性獨高尙 卜居空谷中
편성독고상 복거공곡중
전林鳥求友 落체花辭叢
전림조구우 낙체화사총

자신을 보며 읊음(自詠)으로 번역해본 율(律)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1532~1587)으로 이황의 제자로 영남 사림 중에 한 명이었다. 그는 사물의 근본은 천(天)에서 생겨나 심(心)에서 갖추어진다 하여 학문할 때는 이익을 구하지 말고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라고 했다. ‘내시교관’ 등에 임명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독서에만 열중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모난 성격 홀로 고상함을 지켜, 텅 빈 골짜기에 집 짓고 살지. 숲속엔 벗 찾는 새소리 맑고. 섬돌엔 나풀나풀 쌓인 꽃잎들]라는 시상이다.
서애 유성룡이 권호문에게 보낸 시문에서 전한다. ‘도(道)를 배우자니 힘도 부족하고, 출사와 은거의 갈림길에서 근심거리만 많다고 하네. 모두들 경세제민에 몰두하고 있지만, 권호문 그대는 속세를 떠나 맑게 거처하고 있음에 부럽다고 하겠지’. 권호문 생활을 한 마디로 평하는 말이다.
시인 자신이 말했듯이 모난 성격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벼슬을 내려도 마다하고 텅 빈 골짝에서 집을 짓고 산다. 새 소리도 맑고 섬돌엔 쌓인 꽃들만 가득하고…
화자는 모난 성격 때문에 고상함도 지키고 골짝에 집짓고 살고 한가로움을 맛본다. 새소리는 벗을 찾고, 꽃잎까지 나풀거려 한가로운 그런 화자의 문학적 상상력을 만난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주렴드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 옷깃 풀어헤치니 시원한 냇바람 . 일없이 청아한 한 수 시를 읊으니, 구절구절 참 이렇게 한가로울 수 없네]라고 했다. 시제가 말해주듯이 시인의 한가로운 생활을 움영한다.
【한자와 어구】
偏性: 모난 성격. 獨: 홀로. 高尙: 고상하다. 고상함을 지키다. 卜居: 집을 짓고 살다. 空谷中: 빈 골짜기 가운데
전: 지저귀다. 林鳥: 숲 속의 새. 求友: 벗을 찾다. 落체花: 섬돌에 꽃이 떨어지다. 辭叢 떨기되어 나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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