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지고 : 花開花謝 / 매월당 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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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고 지고 : 花開花謝 / 매월당 김시습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5.12.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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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2】
구름 모습은 자주 변한다. 먹구름 흰구름 뭉개구름 등 모양도 다양하여 큰 비를 동반한다. 그렇더라도 산은 묵직하여 만년을 버티어 서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자연은 그렇다고 치자. 인간 세상은 어떤가. 매월당은 분명 세조의 왕위 찬탈을 보면서 자연을 빗대면서 사람들에게 큰 당부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평생 즐거움 누릴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전제하면서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의분에 찬 나머지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花開花謝(화개화사) / 매월당 김시습
꽃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리나
구름이야 가건 오건 산은 다투지 않으니
평생에 즐거움 누릴 곳 아무 곳도 없어라.
花開花謝春何官 雲去雲來山不爭
화개화사춘하관 운거운래산불쟁
寄語世人須記憶 取歡無處得平生
기어세인수기억 취환무처득평생

꽃은 피고 지고(花開花謝)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집현전 학사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재주를 보고 경탄하여 이름을 시습(時習)이라 지어 주었다. 어린 시절 세종대왕이 그의 천재성을 듣고 5세의 김시습을 불러다가 글을 짓게 하자 바로 글을 지었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리나, 구름이 가건 오건 산은 다투지 않는다네. 사람들아 내 하는 이 말을 부디 기억하라, 즐거움 누릴 곳 평생에 아무 곳도 없다네]라는 시상이다.
매월당이 서강(西江)을 여행하다가 한명회(韓明澮)의 다음 시를 보고 운을 바꾸어 조롱했다.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白首臥江湖)=한명회 ⇔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靑春亡社稷),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白首汚江湖)=김시습] 매월당의 해학에 지나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고 한다.
사람은 살면서 무엇을 추구하는가? 쾌락이다. 돈을 벌어 풍족한 의식주를 누리고자 하는 것,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여 자기를 과시하는 것, 심지어는 사랑과 우정도 일종의 쾌락으로 여긴다. 그런데 시인은 즐거움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화자는 꽃은 봄의 일종의 현상일 뿐이고, 본질은 계절의 순환 즉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했다. 구름은 바람에 따라 오고 가지만 산은 그대로 있다고 보았다. 봄은 하늘의 이치 즉 천리(天理)요, 산은 땅의 기운 즉 지기(志氣)다. 사람은 하늘의 뜻인 ‘원형이정’을 따르면 즐거움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고 말한다.
【한자와 어구】
花開: 꽃이 피다. 花謝: 꽃이 지다. 春: 봄. 何官: 어찌 다스리다. [官]은 ‘다스리다’는 뜻. 雲去: 구름이 가다. 雲來: 구름이 오다. 山不爭: 산은 다투지 않는다.
寄語: 말을 들으시게. 世人: 사람들. 須記憶: 부디 기억들하시게. 取歡: 즐거움을 누릴 곳. 無處得: 아무 곳도 없다. 平生: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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