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잔치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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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잔치에 다녀와서
  • 시인 김종례
  • 승인 2015.12.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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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느 노인잔치 초대장을 받고 타군에 다녀온 적이 있다. 격려금 봉투를 마련해 가지고 식장에 들어섰는데, 소란스러워야 할 식장은 예상외로 무거운 침묵만 내려앉아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출입문에서 맞이하는 분도 노인이시고 단상에서 개회식을 하는 어른도 언어가 어눌하시다. 70대 이상의 노인들만 즐비한 식장의 분위기가 어쩐지 쓸쓸하기만 하여 둘러보니, 50대 가량의 어느 기관장 한분이 가장 젊은이였고, 그 다음이 60대인 나였다. 초대장을 여기저기 보냈기 때문에 내게도 왔을 터인데, 지역 인사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서 좀 의아하였다. 거기다 격려금조차 접수하지 않아 송구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힘겹게 문맥을 이어가며 낭독하는 대회장의 윤리 선언문을 듣노라니 가슴이 더욱 뭉클하였다.
윤리선언문을 찬찬히 살펴보니, 첫째. 우리는 인의예지(仁義禮智)에 근거한 문화민족임을 자긍하고 효제 윤리의 실천에 앞장선다. 둘째. 우리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 회복에 주력하며 전통적 미풍양속 계승에 앞장선다. 셋째. 우리는 유교 윤리에 위배되는 퇴폐풍조를 배격하며 새로운 이념 창조에 앞장선다. 넷째.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 전통만을 고수하지 않고 서구문물이라 하여 전면배격하지 않는다 등이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유교적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살아 온 백의민족임을 누구나 자랑하고 있다. 서구화와 세계화의 혼잡한 물결 속에서도 정통성의 명맥이 근근이 버텨 온 것도 인의예지 뿌리가 깊이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이어져야 하는 인(仁)이 쇠약해짐으로 예절(禮節)의 근간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는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온갖 죄악과 비리와 테러를 바라보며, 새로운 윤리이념을 창조해야 할 필요성을 누구나 절감하며 하루살이마냥 위태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방예의지국의 한민족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내려왔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너진 이 시대의 윤리관을 끌어안고 모두가 통곡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망막한 사막 한 가운데서 풀 한포기 길러내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는 새 시대의 윤리관을 정립해 나가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수신제가평천하를 외쳐대며 가까이는 내 자신을 먼저 다스려 가정의 화목을 영위함이 선무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부정적 요소를 꾸준히 걸러내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인간적 풍화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온 인류가 다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점점 시대의 주인이 될 차세대들이 갈 길을 잃고 표류하지 않도록, 윤리적 기강 확립과 도덕성 회복을 위해 우리 모두 발 벗고 나설 때이다. 물질중시 풍조를 타파함으로써 정신문화가 말살되지 않도록. 더 이상 거꾸로 가는 세상을 관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을미년 마지막 달력장을 매만지노라니 문득 얼마 전에 모 신문에서 읽은 노인삼반(老人三反) 증상이 생각난다. 가까운 것은 잘 못 보면서 먼데 있는 것은 오히려 잘 보는 노안증상, 엊그제 일은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먼 옛날 어릴 적 참 좋았던 그 시절은 생생하게 기억해 내는 특징, 그리고 기대감과는 달리 엉뚱한 길로 치닫고 있는 내 자식은 보기 싫으나, 그 속에서 나온 손주는 갈수록 점점 예뻐진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음일까~~ 사람을 보면 그 얼굴만 보였던 어린 시절, 얼굴과 몸이 함께 보였던 젊은 시절, 지금은 사람을 만나면 그 하는 짓이 보이니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의 영혼이 보일 것은 틀림없다.
노인들만의 노인잔치를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 내 발등에 노오란 은행잎 하나가 앉았다 포르르 날아간다. 잠깐 사이에 지나가 흔적을 찾기도 어려운 나의 젊은 시절마냥~~
다시 한 해의 마지막 해넘이가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는 12월! 여기저기서 온정의 손길과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아무리 쏟아진다 한들 그것은 잠시의 위안일 것이다. 온고지신의 정신과 민족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인의예지 전통을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윤리선언문을 낭독하는 젊은이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면야 얼마나 든든하고 믿음직하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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