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의 복덩이 '인재보습학원' 이경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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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의 복덩이 '인재보습학원' 이경노 원장
  • 나기홍 기자
  • 승인 2015.11.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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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태어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로 인해 보은과 인연이 되어 보은사람보다 더 보은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 사람, 학원 원장선생님으로, 보은군축구협회 임원으로, 적십자보은지구협의회 핵심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봉사현장에는 언제나 눈에 띄는 진정한 봉사자인 인재보습학원 이경로(49) 원장을 만나 보은사람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인성과 창의력 중시하는 참 교육자’
보은읍 삼산리 마늘전 골목을 들어서면 ‘인재보습학원’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올라서 강의실에 들어서면 벽면에는 이 원장이 직접 쓴 서예작품이 걸려있고 학생들의 수납장과 교재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경노 원장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독특하다.
이 원장은 학생이 처음 들어오면 우선은 많은 대화를 한다. 대화를 통해 이 아이의 생각, 공부를 안했으면 왜 안했는지, 이 아이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등을 면밀히 관찰해 공부보다는 우선은 학원에 흥미를 느끼게 만든다.
“공부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학생들에게 학교가 흥미가 있어야 되듯이 학원도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곳, 가고 싶은 곳이 되어야 그다음단계로 학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죠. ”
이 원장은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인성이 올바르지 않고 창의력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교육이라는 것이 이원장의 지론이다.
이 원장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고나면 학원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아이들과 축구도하고 자장면도 사주며 그동안의 노력을 위로하고 보상한다.
인재보습학원에서 3남매를 모두 공부시킨 한 주민은 “아이들이 성적이 좀 처지 길래 인재보습학원에 보냈는데 모두가 잘 해줬고 원하는 대학에 다 갔다”며 “무엇보다 애들이 올바른 인성을 가진 건강한 자녀들로 커줬다. 모두가 이 원장의 덕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보은군 컴퓨터 정보화의 숨은 일꾼’
이 원장이 보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1989년 12월 친구를 만나러 왔던 것이 보은에 처음 왔던 것이고 군복무를 끝내고 졸업을 한 다음 1993년 친구의 컴퓨터학원에 강의를 도와주러 왔다가 그게 계기가 되어 백화점 전산담당자로 취업이 됐지만 이것도 포기하고 그해 10월부터 보은에 눌러앉게 됐다.
3년여를 친구의 컴퓨터학원에서 일하던 그는 컴퓨터 학원 일을 접었다.
“컴퓨터가 전공이라서 다른 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저의 적성에는 누구를 가르치는 일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1996년 12월 인재속셈학원의 문을 열고 2001년에는 인재보습학원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까지 20년간 학원을 운영해 왔다.
평소 학원 운영에 매진한 그였으나 그는 컴퓨터 교육능력은 방치하지 않았다.
그의 컴퓨터 교육능력을 인정한 삼산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특기적성프로그램으로 컴퓨터교육을 의뢰해 97년부터 2008년까지 11년간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고, 2002년부터는 군청 정보화교육 강사로 위촉되어 2014년까지 12년을 군민정보화교육에 동참한 보은군 정보화교육의 숨은 일꾼이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 컴퓨터를 배운 이는 2000여명이 넘으며 교육이수 후 자격증을 따서 취업한 사람만도 100여명이 훨씬 넘는다.
그는 보은군노인장애인복지관이 처음 생겼을 때는 재능기부차원의 컴퓨터교육을 5년간 무료봉사로 제공하는 등 보은군 컴퓨터 정보화교육의 산증인이며 중심인 셈이다.

‘이웃에 사랑과 희망 주는 사회 활동가’
이 원장의 왕성한 사회활동은 언제나 그 누구보다도 눈에 띈다.
이 원장은 지난 11월 9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연송적십자봉사회 임시총회에서 2016년도 회장에 선출되어 취임식만 기다리고 있다.
또, 보은군축구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보은군 축구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보은군 축구협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다.
“96년에 결혼을 하고나니까 살이 찌더라구요. 그래서 축구공을 들고 동광초 운동장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좋구 저도 운동이 좋아 동광조기회에 입회하게 됐습니다”
조기회에 입회 목적이 아니라 건강관리차원에서 축구를 하려고 나갔다가 동광조기회에 입회한 그는 축구에 대한 애정과 회원들에 대한 봉사차원에서 아침이면 공과 물을 챙겨서 운동장에 나갔고 이러기를 3년, 그의 열정과 헌신에 감동받은 회원들은 그를 2002년도 동광조기축구회 회장으로 선출했고 2005년에 또다시 회장을 역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보은군축구연합회에 들어가 활동하다 최상열 연합회장 당시 전무이사를 보게 됐고 보은군 축구연합회의 전성기를 여는데 최고의 공헌을 했다.
축구심판자격을 갖고 있는 그는 지금도 지역의 크고 작은 축구대회에 심판으로 활동하며 축구발전에 혼신을 다하는 행동하는 축구인이다.

이 원장은 적십자 인도주의 실현에는 더 열정적이다.
2004년 연송적십자봉사회에 입회한 그는 환경분과위원장, 노인장애인분과위원장, 재정분과위원장을 거쳐 외무부회장, 내부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상임부회장을 맡고 있다.
1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이웃사랑의 활동들은 말로다 표현하기 어렵다.
진천지역 홍수, 서해안기름유출사고, 충청지역 폭설피해등 재난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고, 집수리봉사, 세탁봉사, 사랑의 연탄배달, 사랑의 김장나누기, 조손가정돌보기 등 수많은 적십자 봉사 활동에 빠짐없이 참여해 어렵고 그늘진 이웃에 사랑을 전하고 있다.

‘ 아름다운 가정 이끌어가는 효자 가장’
이경노 원장은 1966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청요리의 농가에서 3남 1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농가에서 태어나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이 원장도 여름이면 소풀을 뜯기고 소꼴을 베었으며, 겨울이면 들로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녀야할 보통의 시골 아이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본인의 노력과 자식교육을 시켜야겠다는 부모님의 희생과 노력 덕에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보은으로 찾아들었다.
보은으로 들어 온지 3년 만에 지인의 소개로 보은이 고향인 아내 권영희(44)씨를 만나 인재보습학원을 운영하며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그사이 1남 2녀의 자녀도 얻었다.
남규(고2), 윤영(고1), 윤민(중2)이 그의 자녀들이다.
남규군은 보은중학교를 졸업하고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제대로 다녔으면 고3 이어야 하지만 고2인 이유다.
이 원장은 “남규의 의지가 확고했고 저 또한 아들을 위해 돈을 물려줄 입장도 못돼서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가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유학을 보내게 됐다”고 말한다.
이 원장은 효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매달 빠지지 않고 부모님을 찾아 농사일도 거들어드리고 말벗도 해드린다. 부모님을 찾아뵐때는 항상 아내와 자녀들을 대동한다.
“효도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봉양차원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손자손녀와 며느리를 보여드리고 부모님께 웃음을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 아닌가 생각한다.”는 이 원장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끌어가는 효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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