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쳐드림 : 寄呈 / 반아당 박죽서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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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쳐드림 : 寄呈 / 반아당 박죽서 (여류시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5.11.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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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0】
여인의 심약함은 말이나 글에서 읽는다. 어디 그것이 여인에만 한정할 수 있었겠는가만은 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시를 쓰는 조선 여인의 대체적인 특징은 기녀나 소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행여 임이 오시지 않나 규방에서 기다려지는 심회가 글 속에 나타나게 된다.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던 같다. 새벽녘까지 밤새워 기다리는 심정을 자연에 비유하면서 꿈길마다 만났던 심회로 읊었던 시 한수를 번안해 본다.

寄呈(기정) / 반아당 박죽서
호롱불 밤을 새워 동트는 새벽녘에
홀로된 기러기 울음 애처러워 못듣겠네
임 향한 마음 굳세건만 꿈만 깨면 사라진걸.
燭影輝輝曙色分 酸嘶孤雁不堪聞
촉영휘휘서색분 산시고안불감문
相思一段心如石 夢醒依稀尙對君
상사일단심여석 몽성의희상대군

부쳐드림(寄呈)으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반아당(半啞堂) 박죽서(朴竹西:1817~1851)로 여류시인이다. 원주 사람으로 철종 대에 종언(宗彦)의 서녀이자 서기보(徐箕輔)의 소실이었다. 시풍은 한유와 소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생동안 병약했으므로 감상적인 한시를 많이 써서 126수가 시문집에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호롱불 밝혀 밤새우고 동이 트는 새벽녘, 홀로된 기러기 울음 애처로워 못 듣겠어요. 임을 향한 이 내 마음 돌처럼 굳세건만, 꿈을 깨면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대 모습]이라는 시상이다.
시인은 뛰어나게 시를 잘 지어 천재성을 보였으며, 시문은 대체적으로 서정적인 면이 강했다. 조선 여인의 특징인 애타게 그리는 여심(女心)과 기디림에 지친 규원적(閨怨的) 소제로 한 시문을 남겼다. 그의 반아당(半啞堂)이란 호에서 보여주듯이 반벙어리라는 뜻에서 그의 삶을 대강이나마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녀로 태어나 소실로 생을 마감했으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촛불을 밝히 놓고 새벽넠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홀로된 외기러기 울음을 차마 들을 수 없다고 자기 처지와 어울려 시상을 일으킨다. 밤마다 임을 향한 시인의 마음은 돌처럼 굳고 단단하건만 꿈길 속에서 자주 보았던 임의 모습이 멀리 사라졌다는 심정을 잔잔히 읊고 있다.
심약한 화자의 심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임이 없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처지까지도. 꿈길 속 천리라도 뒤따라 갈 수 있으련만 꿈만 깨고 나면 사라졌으니 그리움을 더했을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한자와 어구】
燭影: 호롱불 그림자. 輝輝: 광채를 발하다. 曙色分: 새벽빛이 밝다. 酸嘶: 외롭게 울다. 무딘 울음. 孤雁: 외로운 기러기. 不堪聞: 듣지 못하겠다.
相思: 임을 생각하다. 一段心: 이 마음. 이 한단의 마음. 如石: 돌과 같이 굳다. 夢醒: 꿈을 깨다. 依稀尙: 오히려 희미하다. 對君: 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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