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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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예찬
  • 이장열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장)
  • 승인 2015.11.0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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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놈이 세살 때, 갓 말을 알아듣고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라고 시키면 “나- 차-ㅁ, 바-보 사았군요”라는 말을 길게 빼서 반복하곤 했다. 그것이 재미가 있어서 자꾸 노래를 시켰다. 나중에는 그놈도 지겨운지 한참 설득한 후에야 그 진귀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이 텔레비전을 보고 배웠는지 모르지만 김도향의 노래,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되는 소리만 기억하고 흉내내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바보같은 아이의 노래를 듣고 또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고 웃었던 때가 생각난다.
아이의 행동은 그저 재롱스러울 뿐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약간 모자라는 바보의 언행을 보면서 우월감에서 즐거워지는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바보는 자신의 온몸을 바쳐 삭막한 세상에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는 천사이다. 이미 작고한 유명한 갑부 코메디언 이모씨는 무대에 올라가서 바보짓만 하니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돈도 많이 벌게 되었노라고 했다. 바보도 바보를 보고 즐거워하는 법이다. 그것은 역시 자기보다 더한 바보가 있음을 보고 자기는 적어도 그 보다는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나 아닐까? 그러나 자기가 바보인줄도 모르는 바보라면 내 생각이 비약한 것일 뿐이다.

스페인 라만차지방 어떤 마을에 ‘알폰소 까하노’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기사도 소설에 빠져 주야로 탐독하던 중 급기야 미쳐버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돈끼호테 데 라 만차’(라만차의 돈끼호테)로 바꾸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이상을 세우게 되었다. 그는 세상에서 불의를 타파하며 약자를 돕겠다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기사가 되어 충실한 종자 ‘산초’를 대동하고 모험에 나선다. 꾀죄죄한 낡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비쩍 마른 말(馬) ‘로시난테’에 올라 세 번에 걸쳐 출정의 길을 나선다. 첫 번째 출정에서 ‘똘레도’(마드리드 근처에 있는 중세의 도시) 상인에게 매만 맞고, 두 번째 출정에서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 갇혀 있다가 소구루마에 실려 집으로 돌아온다. 세번째 출정에서는 공작부부가 이 바보(?)를 향해 집요하게 우롱을 당하다가 ‘하얀 달의 기사’에게 패배를 당한다. 드디어 ‘돈끼호테’는 모험에 종지부를 찍고 집으로 돌아와 꿈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 죽음을 기다린다. 종자 ‘산초’는 드디어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자가 되어 ‘돈끼호테’의 꿈인 이상정치를 실현한다. ‘산초’는 자신의 꿈은 어리석은 자의 소망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자기 당나귀에게로 가서 ‘돈키호테’와 지냈던 시절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노라고 술회한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돈끼호테’에게 닥아가서 어서 일어나 기사로서의 모험을 찾아 다시 나가자며 오열한다. 꿈 없는 삭막한 현실보다는 허상이나마 꿈이 있던 그때가 한없이 그리웠던 것이다. 바보 ‘돈끼호테’ 자신은 바보로서 생이 무너졌지만 그의 이상은 그에 감화를 받은 충실한 종자 ‘산초’에 의해서 ‘바라타리아’ 섬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바보는 자신의 온몸을 던져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이상을 주는 이타적인 삶을 사는 존재이다. 우리들 중 누가 ‘돈끼호테’의 이상향 실현을 위한 행동을 바보짓이라고만 매도할 수 있겠는가?
옛날 중국 어느 산골에 작은 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새는 멀리 날아 큰 바다를 보게 되었다. 그 조그만 새는 그날부터 바다를 메워 보겠다고 부지런히 조약돌을 물어다 바다에 던졌다. 그리고 바다도 메우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고 한다. 중국의 작은 새의 행동을 두고 그저 바보라고만 하겠는가? 이 세상은 스스로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혼탁하고 시끄러울 뿐이다. 모두가 너저분한 말을 줄이고 그 작은 새처럼 묵묵히 작은 조약돌을 물어다 바다 깊이를 낮추는 일에 일조를 하면 어떨까? 설사 그것이 미미한 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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