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지상주의 버리고 기초과학중시하는 사회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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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지상주의 버리고 기초과학중시하는 사회 돼야”
  • 나기홍 기자
  • 승인 2015.10.29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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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교육지원청 류웅렬 교육장
지난달 12일 보은중학교총동문회 정기총회석상에는 두명의 교육장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한사람은 보은교육지원청 한응석 교육장이었고, 또 한명은 옥천교육지원청 류웅렬 교육장이었다. 모두가 16회와 18회 보은중 동문으로 남부3군중 2개군의 교육계 수장이 보은출신이며 보은중 출신이다. 한응석 교육장은 보은지역에 잘 알려져 있는 인사지만 류웅렬 교육장은 모르는 이가 많다. 이에 옥천교육지원청 류웅렬(61) 교육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교육외길과 포부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류웅렬 교육장은 1954년 산외면 백석1리에서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족할 것도 없는 농가인 아버지 류규열씨와 어머니 송석예씨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류 교육장은 한학자이신 할아버지(류인수)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입학 전에 2000여자의 한자를 익혔고 명심보감을 줄줄 읽어 내릴 정도로 요즈음으로 말하면 조기교육을 받았다.
이런 할아버지의 사랑과 영향으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으나 이것이 오히려 자만에 빠져 고학년이 되면서 공부를 하지 않게 됐고 중학교에 진학하고서도 성적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중2가 되면서 아버지는 “네가 대학을 가기위해 인문계고교를 가면 네 동생들은 대학교육을 못시킨다. 그러니 보은농고를 다닌 후 졸업하고 나면 나를 도와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며 농고로의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그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며 아버지와의 갈등을 이겨내고 결국 희망하는 청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내가 청주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가니 정말로 부친께서는 동생들 모두를 대학에 안 보내셨다. 부친의 뜻을 꺾고 청고를 선택한 것이 나를 위해서는 잘했나 모르겠지만 동생들이 대학을 못간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류 교육장이 교육계에 투신한 것은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있었거나 교직을 열망했던 것은 아니었다.
순전히 부친의 강력한 권고 때문이었다.
“대학을 가려고 했더니 아버님께서 교대를 추천하시더라고요. 그때 청주고 졸업동기들이 1900명이 조금 넘었는데 다들 서울로 갔는데 아버님의 엄명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동기 16명과 함께 교대에 갔지요.”
교대를 졸업한 그는 병역문제와 동생들에 대한 아버지의 염려에 못 이겨 1974년 제천 금산초등학교를 초임지로 교육계에 투신했다.

더 큰 꿈을 꾸던 그는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교육계에 투신했지만 정작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마음이 달라지고 열정과 사명감도 생겨났다.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솔직히 제 자신의 실력이 딸린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소경은 길 인도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퇴근을 하고나면 다음날 가르칠 과목을 밤12시, 1시까지 하게 됐고 공부를 하게 됐고 더욱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공부가 필요해 대학과 대학원을 더 다니게 됐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류 교육장은 교육대뿐만 아니라 이후 청주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교사의 길은 초임지인 제천 금산초등학교로부터 용곡초, 운동초, 문의초를 거쳐 1989년 판동초로 발령이 나면서 시작해 1993년 까지 고향 보은에서 종곡초와 동광초까지 4년간 근무를 하게 되나 다시 보은을 뜨게 된다.
매사에 노력하고 연구하고 열정을 다하다보니 이제 참 교육에 눈을 뜨게 되고 교육에 대한 열정은 높아갔다.
시간이 흐르고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던 그는 2004년에 드디어 교감으로 승진했고, 2011년 교장으로, 2014년 9월에는 장학관으로 승진한다.
그는 “수정초 교감으로 있을 당시 조철호 교장선생님과 함께 밤에도 열린학교를 운영했던 것이 교육계에 있었던 기간 중 가정 보람된 일로 기억되다”며 “학부모들이 대부분 식당 등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어서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었는데 밤에도 열린 학교를 통해 특기적성을 살려주고 정서를 배양한 것은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이어 “어머님께서 살아생전 제가 교장 되는 것, 제 아들이 박사학위 받는 것, 조카가 취업하는 것이 소원이라 하셨는데 2011년 제가 교장으로 승진했고 같은 해에 저의 큰아들이 미국서 스텐퍼드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받았고 조카가 한국무역공사에 합격하는 경사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몇 달을 못 참으시고 그만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이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류 교육장은 “과거에 선생님들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도시락을 더 싸가지고 와서 나누어주고 심지어는 등록금도 대신내주는 사랑이 있었고 학생들은 잘못하면 손바닥과 종아리 맞는 것을 당연시 생각했고 학부모들은 오히려 자식을 나무랄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황금만능주의 핵가족화로 인해서인지 학생들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고, 학부모들은 작은 일만 하나있어도 학교에 와서 항의하고 심지어는 선생님들께 폭언과 폭행까지 발생하는 교권이 무너진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고 교육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류 교육장은 “얼마 전 노벨 물리학상, 의학상 수상자 발표를 보니 다들 80세가 넘은 나이였다. 이는 우리나라 선생님들이 교직에서 40년 이상 연구한 역량들이 62세 정년이라는 것에 걸려 사장되는 것과 비교할 때 대조적인 것으로 정년을 과거처럼 65세로 원위치 시켜 능력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대학진학율이 90%이상으로 전 세계최고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어려워 이른바 3포세대, 7포세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독일은 대학진학율이 44%에 불과하지만 얼마나 잘사는가? 우리나라에 외국인노동자가 100만을 넘고 있는 것은 반대로 일자리가 있다는 것으로 무조건 대학을 보낼 것이 아니라 전문계고교로 진학시켜 기술자를 육성하는 것이 국가의 기초산업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며,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고 대학 지상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600여 교직원과 35개교 5700여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진 옥천교육청 수장으로서 인성과 실력을 갖춘 학생을 키워내는 것을 바탕으로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은 ‘브랜드가 있는 학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느 학교는 골프, 어느 학교는 관현악단, 어느 학교는 사격, 어느 학교하면 축구, 이런 식으로 키워서 학교 이름만대면 아~ 사격! 또는 아~오케스트라!라고 인식할 수 있는 학교들을 만들어낼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류 교육장은 1년 6개월 후면 정년을 맞이한다. 그는 긴세월 보은을 떠나 타 지역에서 후학을 육성해 내면서도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는 말대로 한시도 고향 보은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제 그는 옥천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서의 꿈을 이루고 정년을 맞이하면 고향보은으로 돌아와 최근택(금적가든 대표), 손진규(보은신문 이사), 설용덕(대동실내인테리어 대표) 설찬홍(전 보은축협 전무), 송신헌(효성알미늄 대표)씨등 정다운 동창들과 농사도 짓고 교육을 통한 재능기부 봉사도 하며 여생을 보내려 한다.
41년 전 약관의 나이로 교육계에 투신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고 화려한 꽃을 피워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류웅렬 교육장의 금의환향이 기대된다.
정리/나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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