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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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5.10.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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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가을이 젖으니 마음도 함께 젖는 미명이다. 아직 어둠이 채 가사지 않은 시간 개가 짓는 소리에 현관문을 열고나서니 우유 배달을 하는 아줌마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다.
아줌마는 일주일에 세 번 씩 언제나 이 시간이면 작은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우유를 배달 해 주는데 항상 웃는 얼굴이다. 고달플 때도 있겠지만 몸에 밴 듯 그의 상냥한 모습에서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이고 사람냄새가 난다. 어디 이 아줌마 뿐 이겠는가? 사람 사는 것이 그렇듯 이 땅에 사는 대 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이 누리는 기쁨과 괴로움을 나도 누리고 내가 누리는 기쁨과 괴로움을 그들도 누리며 어우러져 사는 것 이 그들의 삶이고 또한 나의 삶이란 생각이다.
사람에게서 사람 냄새 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가끔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 그래서 나도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사노라면 즐거울 때보다는 괴로울 때가 더 많고 평안 할 때 보다는 걱정이나 근심에 쌓일 때가 더 많겠어도 그래도 인생은 살만 한 것이라 여겨지면 이것이 바로 바라는 삶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순하고 평범한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기에 가정을 위해 일하고 가족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면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으면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삶이 곧 자신을 소중하게 지키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때 맏이와 둘째가 대학생이고 막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하던 해 아내가 임파선 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의 말이 임파선 암은 다른 암에 비하여 치료가 잘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진행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악화 될 수도 있어 결과는 50 대 50으로 보고 있으나 좋은 쪽으로 생각 하자고 하였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라는 말인지 위로하고자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 때 진료실을 나서는 아내의 모습은 의외로 태연 하였다. 체념을 한 것인지 속으로 삭이는 것인지 오히려 내가 충격을 감추기 어려웠는데 견디기 힘든 항암 치료를 받으며 완치 되어갈 무렵 아내에게 물었다. 어떻게 암 진단을 받고도 그렇게 태연 할 수 있었느냐고, 대답은 간단했다. 나 죽는다는 생각 하나도 안했어, 하나님이 계시고 당신하고 애들이 있는데 내가 왜 죽어? 하기에 그 믿음과 신념이 당신을 살렸어, 했더니 그런가 하고 웃었다.
지금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이 이야기가 우리 부부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었지만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크고 작은 어려움은 늘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지금 누리는 평안은 축복이라 여기며 감사하고 있다.
어제도 두 달에 한 번 씩 아내가 정기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는 날이라서 병원엘 다녀왔다. 운전을 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기사가 있어서 좋겠다며 이렇게 병원에 다니며 날 고생 시키느니 죽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농을 걸었더니 내가 당신한테 와서 고생 한 게 얼만데 왜 죽느냐고 펄쩍 뛰면서 고생 한 것 갚으려면 기사 노릇으로는 어림도 없다면서 지금 죽으면 너무 억울해서 죽을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단다. 그러면서 내가 없으면 당신이 불쌍할 텐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하기에 내 걱정 보다는 그 용기로 씩씩하게 잘 살아 보라고 하였더니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란다.
지금도 마음은 처녀 때와 같은데 왜 늙었다 하느냐고 아무리 투정을 해도 이제는 여인이라기보다는 칠십을 넘긴 시골 노인으로 몸도 성치 못하고 평생을 집 밖에 모르고 살아 왔어도 불평 없이 삶을 사랑하며 살아주는 것이 고맙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나보다도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형편이나 처지는 다르기에 또는 가치관이나 이상에 따라 추구하는 목적이나 방법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은 각각 다르다 해도 찾아가는 길은 하나이니 앞뒷집 모양은 달라도 사람 사는 것은 거기가 거기고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하니 그러고 보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방법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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