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밤에 : 秋夜有感 / 김금원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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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밤에 : 秋夜有感 / 김금원 (여류시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10.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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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5】
가을바람 불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면 허전함을 느낀다. 왜 아니겠는가. 인생의 황혼도 가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그렇다면 질곡(桎梏)의 삶 속에서 훌훌 털고 벗어나야 된다는, 벗어버려야 된다는 자연의 순환 앞에 고개를 떨 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계절적인 시기에 독수공방 밤을 지샌다는 것은 두려움이자 그리움이 앞 섰을 것이다. 재촉하는 가을 정경 그림을 그리면서 외롭게 지샌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夜有感(추야유감) / 김금원
양강의 관사 안에 가을바람 새로 일고
뒷산은 붉어지고 앞강은 푸르구나
창가엔 벌레들 울음소리 꿈길 못간 찬이불.
陽江館裡西風起 後山欲醉前江靑
양강관리서풍기 후산욕취전강청
紗窓月白百蟲咽 孤枕衾寒夢不成
사창월백백충열 고침금한몽불성

어느 가을밤에(秋夜有感)로 번역하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김금원(金錦園:1817~?)으로 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여류시인이다. 그녀는 원주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병을 자주 앓아 몸이 허약하므로 그의 부모가 글을 권장했다. 글을 뛰어나게 잘해서 경사(經史)에 능통했고, 고금의 문장을 섭렵하여 시문에 능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양강의 관사 안에 가을 바람 일고, 뒷산은 붉어지는데 앞강은 푸르다. 창가에 달빛 밝은데 온갖 벌레 울어대니, 외짝 베개 찬 이불에 잠들어 꿈도 못 꾼다]라는 시상이다.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면서 1830년 3월 14세때 남자로 변장하고 단신 금강산을 유람하여 견문을 넓혀 시문을 지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서 시랑이며 규당(奎堂)의 학사인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 1845년에는 김덕희와 함께 서도와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1847년에 돌아와 별장인 삼호정에 살면서 시단을 형성하였다.
시인은 관사 앞에서 가을바람이 일고, 뒷산이 붉고 앞강이 푸른 자연의 경관을 보고 있다. 이러한 때 창가에 달은 밝은데 벌레까지 울어대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곁에 있어야 할 임이 없어서 달콤한 꿈도 꿀 수가 없음을 상상하게 된다.
화자는 열매를 거두고 차가운 겨울을 준비해야 할 늦가을의 스산함 속에서 기다림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오마던 임이었을까. 멀리 떠난 임이었을까. 외짝 베개 찬 이불을 덮고 있으니 어디 잠인들 오겠는가. 결구처리의 진수를 만난다.
【한자와 어구】
陽江:양강. 충북 영동에 있음. 館裡: 관사 안에. 西風: 서풍. 가을바람. 起: 일어나다. 後山: 뒷산. 欲醉: 취하고자 하다. 붉어지다. 前江: 앞강. 靑: 푸르다.
紗窓: 창가. 月白: 달빛이 밝다. 百蟲: 모든 벌레. 咽: 울다. 孤枕: 외짝 베개. 홀로 자다. 衾寒: 찬 이불. 夢不成: 꿈을 이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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