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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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 이영란 수정초등학교 교장
  • 승인 2015.10.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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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이 속리산의 청정함을 뽐내고, 학교 울타리인 산수유나무에서 들리는 소프라노의 참새 소리가 청량하기도 하고, 시골의 적막함을 깨치는 종소리 같기도 하다. 겨우 준비를 위해 자라고 있는 텃밭의 채소들도 한 낮의 따가움과 가뭄에 지친 듯 잎사귀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겸손한 모습이며 아침, 저녁으로는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보일러를 돌려야 할 시기가 되었다.
꿈 많은 여고를 졸업한 후로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어 50년이 흘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100세 시대를 대비하여 중간 검토를 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은 나보다 먼저 힘든 일은 대신 해 주셨고, 어려운 일을 해결 해 주시는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라 꿈만 키우고 세상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시기였다. 그저 행복하고 세월이 흐름에 아무 감각 없이 외지에 나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선망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객지에서 자취라는 생활을 하면서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고, 사춘기의 언덕을 힘들게 넘은 후 2년은 모든 일에 호기심은 많았으나 자신감이 부족했었다. 무슨 일이든지 해 보고 싶었던 짧은 대학 시절은 젊음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시절이었으며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 본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삶을 개척 할 수 있었던 황금시절이었건만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불만과 불평으로 아까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가장 아쉬움이 남는다. 조용히 눈 감고 생각 해 보면 뾰족 칼라를 입던 여고시절이 학창 시절의 황금기였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시골에서 보다 넓은 곳으로 유학을 갔다는 자부심과 뭐든지 열심히 하면 이룰 것 같은 자신감이 함께 커 가는 시기였다. 즉 인생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시기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한다. 봄에 씨앗을 뿌린 갖은 식물들이 여름철의 무더위와 벌레를 이기고 푸른 숲과 꽃들이 다음의 세대를 위해 맺은 갖은 열매들이 풍성한 가을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자연이 노력하고 만든 결과물을 감사한 마음으로 갖기 보다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토종을 멸종시키는 외래종을 함부로 방치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풍성한 가을에 모두 함께 슈퍼문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한가위가 우리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방송에서나 신문에서는 명절 증후군이 심각하여 연휴가 끝난 다음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고 이혼율도 높아진다고 야단이지만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자식과 형제, 자매를 만나고 부모님을 뵐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임을 불편한 점만 부각시켜 우리들의 삶만 더 메말라 가도록 독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문의 한 모퉁이에 실린 글에는 먼 독일 땅에서 몇 년 만에 찾아온 외국인 사위와 딸들이 함께 간 성묘가 얼마나 행복하고, 고향과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좋은 기회인가를 우리들이 너무 모른다는 안타까움의 글도 보았다. 우리나라 가을이 아름다움과 풍성함 그리고 바람 같은 마음을 고요함에 머물게 하는 고마움을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외국인의 글을 보았을 때 다시 한 번 가을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로움은 얼마나 행복한가? 또한 만나지 못한 기간 동안에 삶의 질곡을 이야기하며 베개를 맞대고 누워서 어릴 적 겪은 아련한 추억을 기억하며 알밤, 고구마, 홍시, 대추를 먹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앙리 에스티엔이라는 사람은 ‘젊음은 알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나이는 하지 못한 것에 탄식한다’ 라고 하였다. 젊음과 나이가 조화로운 삶을 이어 가는 인생 열매가 보은 황토대추 같이 달고 맛있고 알차게 주렁주렁 열렸으면 하는 바램을 빌어 본다. 내 인생의 멋진 종결보고서를 상상하고 수정봉 아래 주옥같은 아이들 웃음소리에 미소 지으며,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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