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어가 단풍을 보다 : 入山<楓> / 회현 조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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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어가 단풍을 보다 : 入山<楓> / 회현 조관빈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10.0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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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3】
선현들은 자연을 보면서 시문을 음영했다. 자연이 시적 대상이요, 시제였던 것이다. 구름 한 점 보면서 시상을 떠 올렸고, 떨어지는 낙엽 한 잎 보면서 인생을 노래했다. 시를 짓는 방법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했다. 적절한 비유법에서는 탄성을 자아낸다. 은유나 환유에선 가슴을 후련하게 했으며, 적절한 시어의 선택은 두 무릎까지 치게 했다. 산에 들어가 단풍을 보면서 산 위에 산이 겹쳐 있음으로 읊었던 시 한수를 번안해 본다.

入山<楓>(입산:풍) / 회현 조관빈
단풍길 지나다가 징검다리 걷노라면
저 하늘 흰 구름이 피어남 모르면서
산 위에 또 산이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네.
丹楓千樹又萬樹 我行悠悠水石間
단풍천수우만수 아행유유수석간
不知天中自雲起 却疑山上又有山
부지천중자운기 각의산상우유산

산에 들어가 단풍을 보다(入山<楓>)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회헌(晦軒) 조관빈(趙觀彬 :1691∼1757)으로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1731년에는 소론의 영수를 탄했다가 유배되었다 풀려나와 호조참판, 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753년 대제학에 있을 때 죽책문의 제진(製進)을 거부하여 성주목사로 좌천되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단풍이 천 그루인지 만 그루인지 끝이 없고, 내 발길은 한가롭게 물을 건너 돌길을 걷네. 저 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남도 알지 못하고, 산 위에 또 산이 있음을 알지 못했네]라는 시상이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방향감각을 잃어 자칫 앞뒤를 분간할 수 없다. 그래서 나침반은 너른 바다를 항해하면서도 필요하겠지만,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도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본다. 언뜻 보이는 해와 그림자를 보면서 방향감각을 짐작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와 같은 시적배경을 담아 쓰여 진 작품으로 보인다.
시인은 산을 걷다보면 계곡이 나오고, 계곡을 걷다보면 졸졸졸 흐르는 돌길도 건너게 된다. 저 높은 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나는 줄도 알지 못하면서 속세를 잊고 자연과 대화하다보면 해 기우는 줄로 모른다. 무작정 자연과 벗하며 걷는다. 자연이 주는 천혜의 선물을 한 아름 가슴에 안게 된다.
화자는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밟다보면 사각사각 무언의 속삭임에 취하는 수가 많다. 그런가 하면 묵직한 산의 중압감을 느끼는 순간 첩첩산중을 만나게 된다. 그 모습은 산 봉오리 위에 또 다른 산 봉오리가 얹혀있음도 한참을 지나는 때늦은 시간에야 짐작하게 된다.
【한자와 어구】
丹楓: 단풍. 千樹: 천 그루. 又: 또한. 萬樹: 만 그루. 我行: 내가 가는 길. 悠悠: 한가롭다. 水石間: 물을 건너서 돌길을 걷다. 不知: 알지 못하겠다. 天中: 하늘 가운데. 自: 스스로. 雲起: 흰 구름이 일어나다. 피어나다. 却疑: 문득 의심하다. 山上: 산 위에. 又: 또. 有山: 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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