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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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에
  • 이장열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5.10.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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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하던 진녹색 산야가 오늘은 누우런 황금들판이 되어 돌아와 조그만 내 서재를 환히 비춰주고 있다. 볼살 통통한 손자녀의 얼굴도 황금빛이다.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오늘은 갑자기 곳간이 가득찬 부자가 된 기분이다.
오늘은 추석이다. 아침에 햇곡식과 햇과일 등 정성어린 제물들로 제례상을 준비하면서 왠지 마음이 바쁘다. 내 정체성을 입증시켜줄 부모님이 한분도 안 계신 지금, 제례상 앞에서나마 뵈올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인다. 그리고 부모님 생각에 쏟아지는 눈물을 고개 돌려 감춘다. 축복받은 이 아침에 죄 많은 자식의 생전 불효가 후회되어 운다. 제물을 차려놓아도 축나지 않고 불러도 대답 없는 그것이 서러워서 운다. 자식들만을 바라고 사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리신 불쌍한 하늘을 향해 운다. 하늘은 하늘답고 땅은 더욱 땅답게 변해있는 이 좋은 계절에 “다 쓸데없다”면서 더 멀리로 내빼버리신 구만리장천을 향해 운다. 그리고는 곧 울적한 마음을 수습하고 부모님의 은혜와 제사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제사란 신이 있다고 믿는 데서 그 가치가 부여된다. 신의 존재여부와 존재형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믿는 마음으로 행하는 일인 만큼 제상에 모신 분을 산 사람 대하듯이 지내야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정성이 있는 곳에 신이 있으며 “제사는 정성이 전부”라고 했다. 정성이란 제물과 함께 마음의 정성이 그것이다. 제상 앞에 많은 제물을 차려놓는 것은 외형적인 물적 정성은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제물에 더하여 마음정성이 지극하지 않으면 그림만 화려할 뿐이다. 그렇다고 조그만 제물도 없이 입제사(口祀)만으로 지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제물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한말 대한제국 시절 청나라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되었을 때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란 제사와 관련된 민화가 다수 발견되었다. 이것이 제사그림인지 제사용 그림인지, 그리고 그린 사람이 청국인의 작품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림 속에는 제사상과 음식, 위페 그리고 사당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모르긴 해도 아마 가난해서 제물이 어려운 서민들이 제물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조상들은 이렇게라도 제사를 지내려고 했던 것이다. 일찍이 선친께서는 “입으로 떡을 하면 조선사람 모두 다 갈라먹고도 남는다”고 하셨다. 입으로만 어떻고 저떻고 하는 성의 없는 구사(口祀)기도와 남의 조상을 먼저 찬하는 것은 조상제사의 본의는 아닌 것 같다. 신이 와서 먹고 안먹고는 봉사자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정성만 다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제사 이야기가 나오니 자식들에 대한 걱정도 안되는 바가 아니다. 오직 물질과 편리함만을 찾는 요즈음의 풍조가 걱정이다. 제 자식들을 키우면서 아직도 부모 사랑의 참뜻을 모르는 자식들이 많은 것 같다. 추석귀향시 부모님들이 싸준 음식물들을 고속도로 휴게소에 다 버리고 가기 때문에 휴게소가 쓰레기 몸살이라는 뉴스보도를 보았다. 내 사후에는 제사 지내지 말라고 말하는 부모들도 더러 있다. 사후에 자식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하는 자식사랑의 말이고 살아있을 때 좀 잘하라는 소망이 그렇게 비친 것이 아닐까. 죽으면 물가에 묻어 달라고 유언한 엄마청개구리의 일화가 생각난다. 엄마의 마지막 마음까지도 이해를 못한 청개구리 새끼들이 인간세계에도 많다. 부모생전에 효자는 없어도 사후효자는 많다고 하신 선친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생전에도 불효하고 사후에도 무관심하다면 소나 말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부모의 사후에 할 수 있는 정성이란 제사뿐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꼭 ‘헛일’만은 아니다.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제 자식만 귀한 줄 아는 자식들은 부모 사후에 뒤늦게 후회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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