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을 걸으며
상태바
새벽길을 걸으며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5.09.24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주 경로당 지도자 연찬회로 인해서 속리산 유스 타운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게 되었다. 집 밖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어디 여행이라도 가게 되어 외박을 하게 되면 잠을 설치게 마련이다. 지난 가을 그러니까 작년 이 맘 때 쯤 연수차 제주도에서 이틀 밤을 잘 때에도 호텔 침대에 누우면 먼저 집 안방 생각이 났는데 이번엔 합숙을 하게 되니 잠자리가 불편 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단잠을 잘 수 있었다. 행사 참여를 위한 준비를 하느라 신경을 쓴 탓에 피곤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깨니 습관대로 4시가 조금 넘었다. 집이라면 책을 읽거나 거실에서 텔레비전이라도 보겠지만 누어있어 봤자 잠을 더 잘 것도 아니고 모처럼 이 가을에 속리산에서 새벽을 맞았으니 운동도 할 겸 산사의 정숙함도 느껴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넓은 마당에 서서 두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니 구름 없는 서쪽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그 많은 별들이 제각각 맑은 빛으로 내게 다가오는데 그 가운데서 세 개의 별이 눈에 뜨인다. 삼태성이다. 그 간 하늘 끝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왔나 보다. 이 가을 새벽하늘의 별을 보노라니 문득 민족시인 윤동주님의 “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지금은 빛이 영롱해도 이제 곧 스러져야하는 이 새벽의 별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있는지 속삭임이 들린다. 이들의 밀어를 알 수는 없지만 오늘도 내게 행운과 평안을 주는 축복이리라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도 가져 본다. 이렇듯 이 시간 이 가을 하늘의 별들이 내게 추억과 낭만을 주고 이처럼 좋은 생각을 실어다 주니 행복한 마음에 발걸음이 가볍다..
도로로 나서니 새벽길은 너무도 고요하다. 인적은 물론 차량 통행마저 하나 없는 길을 혼자서 걸어도 늘어선 가로등을 따라 앞서다가도 뒤 따르기도 하는 그림자가 있어 이야기를 나누니 외롭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남은 날들을 살아갈 이야기, 그리고 어제 아침 집을 나설 때 아내에게 한 농담이며 오늘 오후에 있을 지역 순방 명사 시 낭송회에서 내가 낭송 할 “수선화” 연습 까지 하려는데 들어주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 하느라 가로등 길이 끝난 것을 몰랐는데 어둠에 혼자가 되고 보니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먼 길을 떠나려면 새벽에 집을 나서기 마련인데 그 때 새벽길을 홀로 걷는 나그네의 마음이 어땠을까? 여행의 목적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어도 동반자 없이 혼자서 가는 길은 외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반자, 그래 가는 길엔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 가끔은 혼자서가 좋을 때가 있었어도 내 인생 여정의 긴 여행도 사랑하고 사랑 해 주는 동반자들이 있었기에 울고 웃으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혼자서는 사막을 건너지 못 해도 동반자가 있으면 할 수 있다 했으니 내게 동반자들이 있듯이 나도 다른 이의 가는 길에 이야기를 들어 줄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둠의 길이 끝나고 다시 가로등 길이 펼쳐진다. 듣는 이 없어 못다 한 이야기를 따르는 그림자와 나누다보니 사내리 시내에 이르렀는데 어제 저녁 철시한 상가는 왠지 축제가 끝난 자리처럼 쓸쓸한 느낌이다.
잔디 광장을 한 바퀴 돌며 속세의 욕심을 이 고요 속에 묻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되돌아오는 길, 동이 트면서 이번엔 천황봉 위에 별 하나가 외롭게 걸려 있는 것이 아직 도 내게 할 이야기가 남았는가 싶어 걸음을 멈추니 작별 인사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이젠 가로등도 하나 둘 꺼지고 그림자도 사라진 길 앞쪽에서 마주 오는 이는 걸음걸이로 보아 아침 운동을 나온 모양이다. 스쳐 지나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주고받으니 이 하루의 첫 만남도 공연히 즐거워진다. 나날이 그렇듯 오늘은 내 남은 날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 오늘도 최선을 다 하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버스 터미널에 이르러 대합실에 들어가 긴 의자에 앉아본다. 첫 차가 뜨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은 있어야 하겠기에 승객이 있을 리는 만무 하지만 텅 빈 대합실에 홀로 앉아 있는 마음은 마치 이름 없는 간이역에서 언제 올지 모를 기차를 기다리는 이방인이 되어 보기도 하며 먼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도 이 가을의 유혹이 아닌가 싶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추석과 함께 행복도 익어가는 이 가을이 되기를 기원 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