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찾다가 꽃을 아끼는 마음으로 돌아왔네 : 尋花古寺 / 용재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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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찾다가 꽃을 아끼는 마음으로 돌아왔네 : 尋花古寺 / 용재 성현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9.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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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2】
시인은 꽃구경을 갔던 모양이다. 산에도 들에서 꽃이 피었고, 정원에도 떨기로 피어있는 꽃이었건만 좋은 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는 할 수 없지’ 하면서 사찰을 찾았다. 행여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건만 여기에도 꽃은 다 지고 없었다. 서운했지만 시인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명년 좋은 시절에 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 꽃을 가득 담고 돌아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尋花古寺(심화고사) / 용재 성현
옛 절에 나비 날고 사원 찾는 사람 없네
어제 핀 꽃 찾았으나 흔적 없이 시들고
마음에 아낀 꽃 껴안고 혼자서 돌아왔네.
春深古寺燕飛飛 深院重門客到稀
춘심고사연비비 심원중문객도희
我昨尋花花落盡 尋花還爲惜花歸
아작심화화락진 심화환위석화귀

꽃을 찾다가 꽃을 아끼는 마음으로 돌아왔네(尋花古寺)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용재(용齋) 성현(成俔:1439∼1504)이다. 문장, 시, 그림, 인물, 역사적 사건 등을 다룬 잡록 형식의 글 모음집인 [용재총화 용齋叢話]를 저술했으며, [악학궤범 樂學軌範]을 유자광 등과 편찬했다. 문집으로 [허백당집]이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봄 깊은 옛 절에 제비는 날아들고, 깊숙한 사원 겹 문을 찾는 이가 드물더라. 어제 핀 꽃을 찾아보아도 꽃은 다 지고 없고. 꽃을 찾았으나 보지 못해 꽃을 아끼면서 돌아왔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의 제목은 [꽃 보러 옛 절을 찾았건만]으로 번역된다. 늦봄의 정경이 한 눈에 보인다. 남쪽으로 날아갔던 제비가 찾아 들어 둥지를 틀어야겠다고 궁리하는 즈음이다. 이 무렵 한적한 사원을 찾아 꽃구경을 나와 서성이는 작자의 모습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흠뻑 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옛절을 찾았다. 종족번식과 안식처 마련이라는 생명 근원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깊숙한 이런 절에 사람의 발길이 잦을 리 없다. 이따금 두 손을 합장하고 지나는 객이 있었다면 동자 스님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화자는 이런 사원에서 소담하게 피어있는 꽃구경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늦봄은 봄비를 맞고 새싹의 성화에 못이겨 그만 여름을 불러들이는 시기에 꽃이 기다려 줄 리는 없다. 두리번거리며 꽃을 찾았건만 꽃은 지고 없다. 서운한 마음 간직하며 꽃을 아끼는 한 아름을 품에 안고 발길을 돌리는 화자의 뒷모습이 훤히 보인다.
【한자와 어구】
春深: 봄이 깊다. 古寺: 옛절. 燕飛飛: 제비가 날다. 深院: 깊숙한 사원. 重門: 겹문. 客到稀: 찾는 객이 드물다.
我: 나는. 昨尋花: 어제 핀 꽃 찾는다. 花落盡: 꽃은 다 떨어지고 없다. 尋花: 꽃을 찾다. 還: 다시. 爲: 하다. 惜花: 꽃을 아끼다. 歸: 돌아오다. 혹은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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