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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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5.08.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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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이사람-마로면 관기출신 세명대 구완회 교수
올해로 을미의병 120주년을 맞는다. 의병은 국가 정규의 군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정의의 군병으로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망하게 될 때는 구국항쟁으로 일어났던 것이며 나라가 망한 뒤에는 부국운동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한말의병을 이야기하면서 충북 제천을 빼놓을 수 없다. 한말의 ‘호좌의진(湖左義陣)’은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주목받고 있다. 20여년을 넘게 의병운동사를 연구한 세명대 교양학부 구완회(마로면 관기출신) 교수를 만나 한말의병에 대한 이야기와 보은지역의 의병사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았다. <편집자 주>

▲ 세명대학교 구완회 교수.
을미의병 120주년을 맞아 한말의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구완회 교수는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91년부터 세명대에 재직하면서 각종 저술과 논문·번역서 등을 통해 우리나라 의병활동에 대한 학술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발표, 의병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힘썼다.
특히 충북 제천에 소재한 세명대학교 교양학부에 몸담고 있으면서 제천의병, 제천시를 의병의 도시로 발돋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구완회 교수다. 20여년 동안 제천의병 ‘호좌의진’을 연구에 주력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11년 강원도와 의암 유인석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12회 의암대상(학술부문)을 수상한 바 있는 구완회 교수는 저서 '한말의 제천의병' 을 통해 춘천이 낳은 의병장으로 조선 13도 창의군도총재를 지낸 유인석 선생이 건설한 '호좌의진'의 발전과정을 체계화시켰으며 '한말제천의병연구' 등 연구서와 정기적인 의병관련 학술회의 활동으로 의병사 연구에 대한 학술적 기여가 인정받았다.
또 구 교수는 이번 수상 외에도 제천시문화상(1999년)과 보훈문화상(2009년)을 수상한 바 있어 보은출신임을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제천을 의병의 도시로 만든 ‘호좌의진’에 대해

충북 동북지역의 중심으로 전개된 한말의 ‘호좌의진’은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말 지역사회의 상황을 보면 안으로 옛 질서가 흔들리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이 있던 시기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당시 산악지역인 사군(단양, 제천, 청풍, 연풍)에서 발발하게 됩니다.
당시 사군은 배론성지인 서학의 중요한 근거지며 동학의 중요한 근거지를 바탕으로 척사적 경향으로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항로의 제자인 유중교가 제천의 장담으로 비슷한 시기에 박세화도 청풍에서 강학하면서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특히 전기 척사의병의 계기는 1895년 여름의 ‘국모’ 시해와 연말의 단발령으로 을미의병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춘영과 김백선이 이끄는 양평쪽의 포수부대와 제천의 유인석등 화서학파 선비들이 합류하면서 척사적 성향의 선비와 포군, 농민들의 참여로 호좌의진이 건설되게 됩니다. 단양.청풍군수등을 처형하고 충주 공략하고 수안보의 일본군을 공격한 것이 ‘제천의병’ 이라고 합니다.
특히 유인석의 활동과 함께 원용팔(1862~1915)이 주도하는 중기 의병기의 활동과 이강년(1858~1908)의 후기 의병기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의병활동이 모두 ‘호좌의진’의 정통성을 지키며 유지되었음을 규명한 바 있습니다.
의암 유인석은 의병활동에서 상징적인 분으로 단발령 등 위기가 닥쳐왔을 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 지식인의 책임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전기에서 후기까지 의병활동을 통솔한 경우가 드문 만큼 나라 안팎의 의병운동 기지건설을 처음으로 착안하고 독립운동 기지 건설 역할도 담당한 선구자였습니다.

의병의 역사와 역사의식의 가치에 대해 소외된 이유에 대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의병의 역사가 제대로 기억되기 어려웠으며 서국중심의 세계인식이 일반화되면서 유교적 가치가 나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의병은 구질서에 얽매인 완고한 유생들의 저항이었습니다.
특히 친일파 청산의 실패와 분단의 고착화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 항일 투쟁의 역사 가치에 대한 헌신이 낮게 평가받게 되면서 의병의 가치는 철저히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천출신의 강승원의 소설 ‘남한강’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배경에서 나타난 사회적 현상을 표현한 소설로 대조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의병의 후손의 삶과 친일 후손의 삶을 너무나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병의 역사는 반외세적 투쟁이지만 낡은 가치를 고수했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국수적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과장된 연구로 진실이 왜곡된 사례가 많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런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 충북문화관광해설사 전문역량 강화교육에 초빙된 구완회 교수가 호좌의진, 제천의병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 의병의 역사에 대한 기억의 반성이 필요하다

의병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이 필요합니다. 조선왕조 시대의 관점이 아니라 시민의 관점에서 의병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의병과 관련된 무덤과 전적지를 포함한 사적지 지정이 필요하며 의병을 기념하는 도로명, 제천의병제, 의병 도서관등의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의 지역으로 국한되어 있는 범위를 넘어 특정 장소나 길에서 의병을 기억할 수 있는 안내판과 다양한 현장답사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세계화, 경제 만능시대, 세계 질서의 재편기라는 역사적 흐름속에서 ‘주체성’ 과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어려운 시기를 의병의 역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끝으로 의병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랑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에서 얻은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적 그 시대의 삶과 지금의 삶과 비춰보면서 미래의 위한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천의병 연구의 중심이 된 구완회 교수에게 보은에 대한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보은은 지형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속리산이라는 배산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의 파란만장함을 그대로 간직한 곳입니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접경이라는 점에서 속리산은 찾아올 수 밖에 없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갑오년 동학이전 보은집회를 통해 수많은 백성이 한자리에 모여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가 올랐던 곳이며 1895년 이후에는 수많은 의병전투가 발발한 곳입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기록을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기회가 되면 어릴적 기억을 상기하면서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습니다.
구완회 교수의 주요저서로는 지난 97년 출간한 ‘한말의 제천의병-호좌의진 연구’ 를 비롯해 의암학회 총서 6, 원주의 안창마을에 전하는 의병이야기, 한말 의병장 이강년의 생애와 운강집 등이 있으며 지금은 세명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가 출생한 구 교수는 관기초(48회), 보덕중(19회), 청주고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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