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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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린 비
  • 보은신문
  • 승인 2015.07.0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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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갔다. 비가 내릴 때에는 마침 외출 중이었기에 집에서 걱정 할 것 같아 빨리 가기는 해야겠지마는 가뭄 끝에 내리는 비라서 그쳐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오히려 좀 더 많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하였다. 내일 부터는 장맛비가 내리겠다는 예보가 있기는 해도 몇 차례 감질 맛나게 애 만 태웠으니 그 보다는 예보도 없이 갑자기 내려주는 비가 고마울 데 그지없다.
그 간 아내는 마당에 심어 놓은 오이 상추 도마도등 채소에 물주기가 매일 일과였다. 뿐만 아니라 언덕배기 밑에 놓은 호박 몇 포기에는 양동이에 물을 담아 전동차에 싣고 가서는 뿌려 주어도 그 때 뿐, 잎이 시들라 치면 금방 말라 죽는 줄 알고 애를 태우곤 했다. 또 텃밭에는 고추와 콩을 놓았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고 조바심 하는 아내의 걱정은 몇 백 평 몇 천 평 농사하는 이들 보다도 오히려 더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 해 텃밭이 조금 생기게 되어서 처음 밭농사를 하는 마음이라서 그러려니 하기는 해도 너무 조바심이기에 곡식도 그렇게 쉽게 말라 죽는 게 아니라고 하면 나도 당신처럼 속 좀 편해 봤으면 좋겠다고 볼 멘 소리니 나도 걱정 하는 체라도 해야 했는데 비가 내려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마침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누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70년대에 서독 간호사로 파견 되었다가 이십 여 년 후에 고국에 와 보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인 것 같다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어디서나 마음대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중동 지방에서는 물 값이 기름 값 보다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독일에서도 물을 사서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제는 우리나라도 물을 사서 먹게 되었기에 자연을 해치고 관리를 잘 하지 못한 우리들 잘못의 결과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니 내리는 비가 새삼 고마운 마음이다. 또 요즘처럼 이 땅이 아무리 물을 절실히 원해도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하늘을 원망 해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때가 되어 이처럼 단비를 내려주니 얼마나 고마운 이 자연의 섭리인가 싶어 감사 하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집에 돌아오니 비는 맞지 않았느냐고 묻는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당신 일과 걱정을 덜어 주셔서 좋겠다고 하였더니 그렇긴 하지만 비가 갑자기 와서 빨래가 젖어 다시 빨아야 될 것 같다고 한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상큼한 바람이 다가온다. 지난밤에 내린 비로 온 산과 들이 싱그럽다. 초원처럼 펼쳐진 들판의 먼 곳에선 목가가 들려오고 보를 채우고 넘쳐흐르는 시냇물소리는 자연의 찬가 그대로를 들려준다. 한 낮이 되면 또 다시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쬘지라도 이아침은 목가가 들려오는 들녘의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그래서인지 페달을 밟는 발길은 한결 가벼워지고 평온함은 나를 감싸준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랜 가뭄 탓에 공연히 불안 했던 마음이 한 줄기 단비로 이렇게 상쾌한 아침을 내게 주고 평안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라는 생각이다.
지금이야 농기계로, 갖가지 농약으로 노동력을 대신 해 주지만 그 때는 왜 그다지도 일이 많았는지? 이 때 쯤 이면 보리 벤 밭에 콩이나 팥 고구마를 심어 놓으면 잡초가 한참 자랄 때이기에 김매기를 해야 하는데 장맛비라도 며칠 계속 해서 내리기라도 하면 풀이 많이 자라서 일은 그 만큼 더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고달픈 그 때였지만 그래도 그 시절, 삶은 감자를 바가지에 담아 놓고는 식구들이 둘러 안자 먹던 소박한 행복의 시간들은 이아침의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해 본다.
닭이 울어 새벽을 깨우면 초가집 지붕위로 연기가 오르면서 하루가 열리고 참새들이 싸리울을 넘나들 때 쟁기를 지고 소를 몰아 사립문을 나서던 머슴 아저씨의 고된 삶의 하루도 이 시각부터 시작 되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농사일은 먹을 것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해야만 했던 전쟁과도 같은 삶과의 싸움이었기에 이아침의 여유가 그 때는 하나의 사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어 갈수록 점점 더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그 시절이 아름답게 남아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막연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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