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뿌리만은 얼키설키 서려 있지요 : 작협곡 / 진일재 성간
상태바
대 뿌리만은 얼키설키 서려 있지요 : 작협곡 / 진일재 성간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7.02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1】
남자가 여심(女心)으로 돌아가 쓴 시문을 만난다. 송강 정철의 가사나 정지상의 송인(送人), 정몽주의 정부사(征婦詞) 등을 들추어 보면 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이런 애절함이 아마 아리랑과 흰 옷으로 우리 민족성을 대변했는지도 모르겠다. 대나무의 굳은 마음을 여심으로, 기울었다 다시 차는 달을 남자의 변덕스런 마음에 비유하면서 요리조리 얽히고설켜 있는 대나무뿌리처럼 여자의 변심일랑 있을 수 없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작 협곡 / 진일재 성간
제 마음 일편단심 대나무 절개 같고
임의 마음 동산의 둥그런 달 같아요
둥근 달 찼다가 기울지만 대뿌리는 얼켰지요.
妾心如斑竹 郞心如團月
첩심여반죽 랑심여단월
團月有虧盈 竹根千萬結
단월유휴영 죽근천만결

대 뿌리만은 얼키설키 서려 있지요(작협곡)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1427~1456)은 재능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유방선(柳方善)의 문인으로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집현전에 들어가 문명(文名)을 떨쳤으나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던 인물이다. 훈구파의 폐쇄적인 의식에 불만을 품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제 마음 일편단심 대나무 같고, 임의 마음 둥그런 달과 같아요. 둥근 달은 찼다가도 기운다지만, 대 뿌리만은 얼키설키 서려 있지요]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큰 대나무 상자를 보며]로 번역된다. 성간이 강희안에게 준 시 ‘기강 경우(寄姜景愚)’에서는 천고에 신기함을 남길 예술은 어떤 것인가를 묻고, 작가의 개성 있는 표현을 모색하면서 문학과 미술이 조화되는 경지를 추구했다고 전한다.
그가 지은 ‘신설부(新雪賦)’에서도 문학하는 자세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패관문학인 ‘용부전(庸夫傳)’에서는 세상의 문제에 맞설 자신이 없고 게으름에 빠져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고도 했다. 문학적 자질과 능력을 갖추기는 했으나 용모가 추하고 성격이 괴팍해서 웃음거리였다고 한다.
시인의 문학적인 재능이 그러했듯이 화자의 마음을 일편단심 대나무 같다고 전제하면서 임의 마음은 동산에 떠오르는 둥그런 달과 같다고 했다. 수많은 세월동안 인고의 아픔을 딛고 버티어왔던 순백을 표출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달이 차면 기울지만, 뒤얽힌 대나무 뿌리는 그렇지 않은 절절한 심회를 나타내고 있다.
【한자와 어구】
妾心: 첩의 마음. 내 마음. 여기선 필자 자신을 뜻함. 如: ~같다. 斑竹: 무늬진 대나무. 일편단심을 뜻함. 郞心: 낭군의 마음. 團月: 둥근 달. 꽉 찬 달. // 有: 있다. 그러하다. 虧盈: 찼다가도 이지러지다. 竹根: 대 뿌리. 千萬: 천만 겹으로, 결국 ‘많다’는 뜻. 結: 얽혀져 있다. 맺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