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 달아나고 임금께서 근심하니 : 江華洋亂 / 의암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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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 달아나고 임금께서 근심하니 : 江華洋亂 / 의암 유인석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6.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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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9】
강화도는 고려를 지키는 요충지인 동시에 한양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왜구를 물리치는 요새지이기도 했다. 초지진 광성보 등이 그 때의 일을 말해준다. 수많은 양민들이 싸우다 죽어갔고, 의병의 푸른 목숨들이 초개와 같이 숨을 거둔 곳이 강화도다.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와 양민들을 학살했던 혼적들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外奎章閣)은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게 된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江華洋亂(강화양란) / 의암 유인석
태평성대 오래도록 편안히 지냈는데
서양인 침범 소식 강화에서 전해오네
선비들 불끈 일어나 나라 은혜 갚아야지.
昇平世久恬嬉存 報急沁城洋?昏
승평세구념희존 보급심성양침혼
都民鳥散震宸念 壯士雲興重國恩
도민조산진신념 장사운흥중국은

백성들 달아나고 임금께서 근심하니(江華洋亂)의 율시인 전구의 칠언체이다. 작자는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할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김홍집의 친일 내각이 성립되자 의병을 일으켰으나 관군에게 패하고 만다. 그 후 만주에서 국권 피탈 뒤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태평성대 오래도록 편안히 지냈는데, 양놈들 침범 소식이 강화에서 전해졌네, 백성들 달아나고 임금께서 근심하니, 선비들이 불끈 일어나 나라 은혜 갚으려네]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강화에서 발생한 서양인 난동]으로 번역된다. 병인년(1866) 8월에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했다는 구실을 삼아 조선을 침략했다. 지금의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까지 왔다가 돌아가 병력을 보강하여 9월에 재침입해 서적을 약탈해 갔다. 온 나라가 흉흉하였는데 피난을 가거나 강화(講和)하자는 논의가 많았다.
시인은 조선이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는데 염려하던 일본은 잠잠했지만 이제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넘보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방비에 소홀했음을 암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약한 모습도 강하게 보여야 함에도 더욱 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화자는 백성들이 달아나고, 임금은 앉아 근심하는 모습을 상상해 낸다. 그렇지만 꺼져가는 나라의 비운을 보고 선비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분연히 일어선 선비들의 모습을 보고 그나만 안심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는 화자를 본다.
【한자와 어구】
昇平世: 태평성대. 久: 오래도록. 恬嬉存: 편안히 지내다. 報急: 급히 전해지다. 沁城: 성내에 스며들다. 洋?昏: 서양인들 침범해 혼미해짐.
都民鳥: 백성들. 散震: 벼락치듯 흩어지다. 宸念: 궁궐은 걱정하다. 壯士: 장사들. 선비들. 雲興重: 구름같이 거듭 일어나. 國恩: 나라의 은혜 갚으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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