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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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이야기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5.06.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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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가뭄으로 비를 기다리는 요즘에 비 소식은 그야말로 반갑기 그지없다. 흡족한 단비가 내려 대지의 목마름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푸른 산과 하늘이 맞닿은 동녘에서 퍼지는 유월의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한낮이 되면 대지를 뜨겁게 할 것이니 이렇게 가뭄이 계속 되는 날에는 맑은 하늘이 반가울리 없어도 비 소식이 있으니 오늘 아침은 상쾌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서울에 사는 친구와 만나자는 약속이 있는 터라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하여 야외로 나가니 들은 어느새 푸른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어쩌다 한 자락 논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이 보인다. 친구도 그 것을 보고는 저게 무엇이냐고 묻기에 보리라고 일러 주니 왜 논에 벼를 심지 않고 보리를 심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그냥 쌀보다도 보리쌀이 더 비쌀 것이라고 하며 후작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내 마음은 먼 옛날의 기억들로 해서 그 시절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이제는 품종도 개량 되었을 뿐 아니라 모내는 시기도 빨라지고 모두 기계로 하기 때문에 대체로 이르면 5월 초부터 늦어도 5월 말 이전에는 이미 모내기가 끝나게 되지만 예전에는 지금이 모내기를 시작 할 무렵이다, 4월 하순 경에 못자리를 하면 이 때 쯤 되어야 모가 한 뼘 정도 자라게 되어 모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릿고개란 춘궁기가 있던 시절, 대개의 농가에서는 논에다 보리를 갈아 이모작을 하게 되는데 보리를 수확 하는 시기가 6월 중순은 되어야 하기에 이 때 보리를 베고 논을 갈아 모를 심으려면 밤에 잠을 잘 틈조차도 없을 만큼 바쁘게 되고 이때는 소에게도 가장 고된 시기가 된다. 웬만하면 소 한 마리씩은 기르고 있지만 그래도 소가 없는 집에서는 남의 소를 빌려야 하는데 모두가 바쁘기 때문에 소를 빌린다는 것이 쉽지를 않아 애를 태우게 마련이다. 그래서 소가 없는 이는 소 있는 집의 일을 하루 해주고 소를 미리 예약 해 두기도 한다. 거기에다 장마가 시작 되는 때라서 비라도 오게 되면 논일이야 비를 맞고도 한다하지만 보리 베는 일은 할 수 없음으로 그래서 모내기가 늦어지면 6월 말은 되어야 끝나게 되기 때문에 이때는 어저께 시집 온 새댁도 논에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당시 우리 집은 마을에서 논이 제일 많았기 때문에 이모작을 하면 일도 감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꾼도 얻을 수 없어서 남 보다 먼저 모내기를 해야만 했다. 모 낼 날을 받아놓고는 머슴 아저씨는 저녁이면 마을을 다니면서 일꾼을 얻어야 하는데 품앗이를 하기도 하지만 이를 놉 얻으러 다닌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모내기 하는 날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이십 여명의 일꾼들이 모 찌는 일을 시작으로 모내기가 시작 된다. 이 날 아침이나 새참에는 빠질 수 없는 메뉴가 바로 막걸리이다. 민초들에게서 흥타령을 자아내게 하고 또 고된 몸을 삭혀주는 구수한 막걸리는 당시 농가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술이었지만 이 술을 만들기 위해서도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식량 사정이 어려운 고로 집에서 술 담그는 것은 물론 원료가 되는 누룩까지도 법으로 허용치 않았기 때문에 밀주 단속이 나오면 마을은 초비상이 걸리고 비상 연락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에서 이웃으로 하여 순식간에 온 마을에 알려지기 마련이다.
기계 이앙기는 보행 식 이였지만 아마도 보은군에서는 우리 집이 가장 먼저 구입 한 듯싶다. 국내 생산은 없었고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이었는데 구입한 이듬해에는 이앙기 보급을 위해 충청북도 농촌진흥원에서는 도내 선도 농가의 교육을 우리 집 못자리 현장에서 실시하며 기계이앙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키기에 애썼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기계로 모내기를 한다고 하니 어떻게 기계가 모를 심을 수 있느냐고 하며 믿지 않던 이들이 구경을 하고는 신기해하면서도 모가 어린 탓에 모내기 한 것 같아 보이지 않으니 부정적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0여년은 지난 이야기이니 “농자천하지대본”이 사라진 지금에선 옛날이야기 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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