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들 굶기고 공부 못 시켜 평생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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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 굶기고 공부 못 시켜 평생 미안”
  • 나기홍 기자
  • 승인 2015.06.11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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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고 싶은 김연옥 할머니

평생 한글을 알지 못해 온갖 불편을 겪어오던 회남면 분저리 김연옥 할머니는 82세가 되어서야 한글을 터득했다. ‘까막눈’ 신세를 벗어난 할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을 생각하며 한편의 시를 썼다. 그리고 이제는 시인을 꿈꾼다, 시인이 되고 싶은 김연옥((86) 할머니의 한 많은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까막눈이 눈 떠 시를 쓰다
김연옥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K-water 대청댐관리단에서 2011년 회인면 중앙리에 대청댐孝나눔복지센터를 개관했다.
효나눔복지센터는 여러 프로그램중 ‘배움의 교실’을 운영하면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효나눔복지센터에서는 한글교실이라고 하면 어르신들이 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어 자존심을 상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한글교실이 아닌 배움의 교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김 할머니는 이때 82세의 나이로 난생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을 시작으로 가나다라 마바사아 자차카타 파하를 읽고 쓰기를 수백, 수천 번 그렇게 3~4개월이 시간이 흘러갔고 어느 덧 김 할머니의 눈에는 글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길가의 간판이 뭐라고 쓰여 있는지 시내버스가 어디로 가는 차인지 알게됐다.
“아 오래살기를 잘했어 이제는 글을 읽으니까 버스도 알아서 타고 장날은 어디 식당으로, 어느 가게로 오라고 하면 간판을 읽을 수가 있으니까 누구한테 안 물어 봐도 되고 여간 신기한 게 아녀~~ 광명천지가 따로 없어” 라시며 안다는 것의 편리함을 말한다.
그렇게 한글에 눈을 뜬 김 할머니는 한글선생님의 권유로 시 쓰기에 도전해 시 한편을 쓴다. 할머니의 처녀작 ‘어머니의 고추’다.
어머니가 따오신 파란 고추는/ 하얀 돈이 눈부시게 들어있다/ 어머니가 따오신 빨간 고추에는 누런 황금이 가득 차 있다/ 자식처럼 키운 고추를/ 머리에 가득 얹어 50리 시장으로 향한다/ 어머니의 고추는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 온다/ 손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자식들의 책이 된다/ 어머니는 한 번도 편히 먹어보지 못한/ 가족들의 흰 쌀밥이 된다/ 어머니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고추가 그립니다.
어렵게 농사지은 고추를 머리에 이고 수 십리 길을 걸어 장에 내다 팔아 이것으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쌀도 팔아 밥을 지어먹이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깊이 녹아있는 아름다운 시상이다.
이렇게 완성해낸 김 할머니의 시 ‘어머니의 고추’는 배움의 교실에서 낭송된다.
“시를 외워서 낭송하라는데 앞이 캄캄한거 야녀? 수 십 명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이건 신방에서 떠는 건 아무것도 아녀, 얼마나 떨리는지.. 하여튼 수 십 번 읽고 외어서 낭송을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나데..”
“시낭송을 하고나서 노인들이 “어머니 고추는 뭐고, 할아버지 고추는 뭐여”하며 수근수근 하는데 마치 욕하는 것 같고 비아냥하는 것 같아서 시 쓰기를 포기하려했는데 한글을 가르친 이동영선생이 이 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듣고 아하! 그렇다면 써도 되겠구나 하고 자신을 얻어 이후에 예닐곱 편의 시를 더 썼어”라며 그때의 떨림과 감동을 말했다.
이렇게 시 쓰기에 재미를 붙인 김 할머니는 지난해 제1회 실버시낭송 대회에 이어 지난 3월 21일 개최된 제2회 실버 시낭송대회에도 나갔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낭송대회는 SBS에 방송되기도 했다.

한 많은 세월 내 나이가 어떼서
김 할머니는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의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김 할머니는 10여살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대전으로 이사를 했지만 그당시는 대전도 별 볼일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일거리도 없어 삶은 입에 풀칠하기에도 바빳고 공부는 더더욱 생각할수 없는 형편이었다.
김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으는 15세의 나이에 남편 고 이성학씨를 만나 회남면 분저리로 시집을 왔다.
김 할머니는 “그땐 결혼이 뭔지도 몰랐어. 아버지가 3년쯤 병석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는데 그때가 내나이 열 다섯 이었어. 하루는 어떤 아줌마가 우리집엘 오더니 나를 자꾸 바라보면서 쟤를 보내면 되겠다면서 어머니하고 얘기를 하더라구. 얼마 후에 웬 청년이 왔는데 어머니가 저 사람을 따라가라고 해서 따라온 것이 시집이더라구”하시며 어린나이에 시집온 사연을 말했다.
15세의 어린나이에 시집온 김 할머니의 시집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결혼식 날 대례청에는 보리밥이 전부였고 술 살돈이 없어 동네에서 꾸어다 잔을 붓고 예를 올려 동네사람들에게 술 한 잔도 접대하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남편의 술과 놀음으로 살림이 나아지지 않자 김 할머니는 봄에는 고사리, 홋잎 등 나물을 뜯어다 팔고, 농사철에는 품을 팔아 7남매를 키웠다.
억척같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김 할머니의 성실함을 보고 사람들이 병작소를 줘 이 수년간 키운 끝에 얼마 안 되는 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김 할머니는 “이제는 자식들 밥은 굶기지 않겠다” 라는 마음에서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땅을 마련하기 전에는 남들 밥 먹는데 가서 기웃거리고 하루 한두끼 먹을까 말까 그렇게 자식들을 굶길 수밖에 없었다.
김 할머니는 “지금도 생각하면 애들 배를 굶긴 것이 제일 마음 아프고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억척같이 살아온 덕에 땅은 마련했지만 가난은 여전해 7남매 중 다섯은 초등학교밖에 가르치지 못한 것이 김 할머니의 또 다른 한이다.
김 할머니는 막내딸 이민희(48 미국거주)씨의 고등학교 진학당시의 어려움을 들려줬다.
“막내 민희가 공부를 아주 잘했어. 그게 고등학교를 가야하는데 영감 죽고나서 20일쯤 됐을땐데 시아버지는 병석에 계시지 하도 어려워서 못가게 했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무심코 있었는데 하루는 며느리가 고모 오늘 시험 보러 갔다고 하데. 그래서 속으로 빌었어 떨어지라구.”
오죽 살기가 어려우면 시험보러 간 딸이 떨어지기를 바랬을까?
막내딸 민희씨는 청주여상에 합격을 하고도 윗방에서 울고 있었다.
“엄마! 다른 애들은 엄마하구 형제들이 와서 엿도 사주고 찹쌀떡도 사주면서 합격하라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교문앞에서 기다렸는데도 떨어졌는데 저는 합격을 하고서도 학교를 가지 말아야 하느냐”고 엉엉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
김 할머니는 당시 돈 15,000원과 쌀 3말을 마련해 막내딸 민희씨를 청주여상에 보냈고 민희씨는 공부를 열심히 해 고3때 미국대사관에 취직을 해 그 후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고등학교라도 졸업시킨 유일한 자녀 막내딸로부터 자녀들을 공부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위안을 삼고 있다.

시집이나 하나 냈으면..
김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기전에는 보은을 벗어나면 버스를 잘못타 엉뚱한 곳을 가본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물어물어 되돌아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만 어떤 사람들은 퉁명스럽게 “그것도 모르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김 할머니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글을 몰라 제일 답답했을 때는 아들들이 군대 가서 편지를 보내면 이걸 읽지 못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들또래 친구들에게 잃어 달라고 부탁하고 답장을 할라 쳐도 꼭 남의 손을 거쳐야 했다.
이때마다 김 할머니는 못 배운 것을 한탄해야했고 부모님 원망도 수없이 했다고 한다.
대청댐孝나눔복지센터 ‘배움의 교실’에서 한글을 배운지 4년 이제 김 할머니는 한글을 거침없이 읽어 내린다.
글을 쓸 때는 받침하나 틀림이 없이 너무나 정확하다.
“글을 잃을 수 있게 되니 광명천지여. 간판도 읽을 수 있고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됐고 누구한테 안물어 봐도 이제는 내가 스스로 척척해. 이게 광명 천지지 뭐여” 하시며 “
처음에는 치매예방에 좋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사군자도 그리고 시도 쓰고 하는데 어설픈 것이 많아. 하지만 열심히 써서 시집이나 하나 냈으면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라며 밝게 웃는다. 할머니의 웃음에서 소녀가 보인다.
대청댐孝나눔복지센터 임재일 센터장은 “올해 실버 시낭송대회에 출전한 29편의 시중 17편이 자작시였다.”며 “어머님들의 자작시를 모아 내년쯤에는 시집을 마련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시인이 되고 싶은 김 할머니의 꿈이 이루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나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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