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막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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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막과 그림자
  • 김종례 시인
  • 승인 2015.05.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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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텃밭과 꽃밭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깨어나서 제일 먼저 창가로 달려가 보는 요즘이다. 아침 햇살이 직사포 쏘아대듯 감나무 잎새 위에 찬란히 내려앉아 눈부시다. 밤새 손가락 마디 하나쯤 더 자라나서 나날이 제 영역을 넓혀가며 흔들거리는 잎새와 그림자들! 이 한철 제 홀로 몸부림치며 하늘아래 가득 찬 푸르름 안에서,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고 또 감사한 아침이다. 문득 어젯밤에 출가한 딸의 징징거리는 전화 속 목소리를 아련히 떠올리며.. 길게 드러누운 감나무 그림자 안에서 쓴 커피 한잔을 다스려 본다. 새삼스럽게 나의 그림자는 뭐일까? 라는 생각에 머무른다. 어느 가정이든 자녀가 장성하여 출가도 하고 직장도 얻어서 부모의 그늘막을 떠나가게 되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남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들은 숙명적 울타리 안에서 단단한 무명 삿바로 엮어져 힘겹게 씨름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필연적인 사랑을 쏟기 시작하여 급기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눈을 맞추며 아름답고 진솔한 영혼이 되어달라고 생후 첫 가르침을 준다. 아이는 점점 자라나면서 크거나 사소한 일로 동고동락하며 함께 나가야 하는 숙명적 울타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때로는 그늘막인 나무가 흔들리면 함께 춤을 추어대는 그림자로 인하여, 부모의 가슴속에 바람소리 일렁이며 잠 못 드는 날도 많지만, 모든 부모는 자녀의 삶과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깊은 영향을 주는 튼실한 그늘막이 되고자, 이 세상과의 씨름을 멈출 수가 없다. 나 역시 결혼식도 하기 전에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교훈이 아직도 내 곁에 진한 그늘막으로 남아 있다. 어릴 적 어머니의 밥상머리 교훈이 지금도 이래라 저래라 사사건건 나를 붙잡고 따라다닌다. 평생 장애인으로 독신으로 힘겹게 살다가 가신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타계하기 전, 사흘동안 힘겹게 썼다는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의 마지막 대목에서 우리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냥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림자를 끝까지 지켜보시던 어머니에게 눈물의 편지 한통을 유일하게 남겼다. 교육과 사색 5월호에 현대판 효도란에 실린 한 대목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조건 효도하라고 가르치지 말고, 효도할 수 있는 환경과 정서와 관계를 만들어 주라는 내용이다> 아무리 부랑아 원수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이해해 주라는 내용이다. 서로가 힘들고 어려운 이 시대에 그늘막과 그림자의 관계가 든든히 형성된다면, 가족이라는 인연은 더욱 아름답게 승화 할 것이다. 부모님이 곁에서 오래오래 튼실한 그늘막 노릇을 감당해 주시는 것, 그 자체가 감사이다. 살아계시는 존재 그 자체가 축복인 것을 철들지 않은 자식이 어찌 알겠으며, 가정이라는 숙명적 울타리에 갇혀보지 않고서야 어찌 이해가 되랴~~ 행여 부모가 잘못 살다가 쓸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다 하더라도, 그 가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형 유산물 하나 툭 던지고 가시는 걸 자식은 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우리말 중에 ‘철(哲)난다’는 말이 있다. 그저 사람 됨됨이가 올곧거나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섭리를 분명히 깨닫는 나이가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자식들이 빨리 철들게 하는 게 어쩌면 부모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떼려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와 그늘막의 관계는 평생 풀어야 할 숙명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자녀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실천하여 깨달음의 샘물을 아낌없이 부어주어 빨리 철들게 할 일이다. 깨달음이 없으면 죽어서도 영원한 그늘막으로 따라 다니는 부모의 존재를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을 다시 보내며... 진정한 사랑의 회복과 가정의 회복이 도래하여 세상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해 본다. 평생 따라다니며 부모도 철들게 하는 얄궃은 자식이라는 그림자! 걱정이 많은 출가한 딸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다시 하고자, 나는 이른 아침에 휴대폰을 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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