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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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그물
  •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이장열
  • 승인 2015.05.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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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어느 해안지방에 갔을 때 일이다. 방풍림이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수수한 어촌마을이었다. 약간 어지러진 해변에는 큰 그물이 길게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색깔은 적색이었고 큰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굵은 줄에 성근 짜임새였다. 마침 그물 앞에 어부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있기에 무슨 고기를 잡는 그물이냐고 물어보았다. 멸치잡이 그물이라고 했다. 앵? 멸치그물이라고요? 그도 그럴것이 그물 한 구멍 속으로도 멸치 정도라면 수백 마리도 동시에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물로서의 역할은 불가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재차 확인해 보았으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 사람은 부연해서 설명해주었다.
즉, 멸치는 붉은 색을 무서워한단다. 그래서 그물을 좁혀오면 멸치떼는 놀라 달아나면서 차츰 그물 가운데로 몰리게 된다고 했다. 마지막 마무리는 다른 작은 그물을 이 그물 안에다 던저넣어서 몰려있는 멸치를 퍼 담으면 된다고 했다.
이런 머리를 쓸 줄을 아는 인간의 지혜가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머리를 쓰는 동물이 인간만은 아니다. 혹등고래들은 사냥할 때 여러 마리가 협동작전을 편다. 그들은 먹잇감들보다 더 깊은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서 공기방울을 뿜어내어 공기방울그물을 만든다. 고래들이 내뿜는 공기방울들은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수직의 그물선을 만들고 여러 마리가 동시에 내뿜는 공기방울들이 모여서 하나의 원통모양의 그물을 형성한다. 그것은 흩어진 먹이감들을 한곳으로 모으고 모인 먹잇감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가둔다. 이때 고래들은 갑자기 물밑에서 수면쪽으로 상승하면서 저마다 큰 입들을 벌려서 물과 함께 물고기들을 빨아들여 입속에 담긴 물고기만 챙겨먹는 것이다. 고래들의 공기방울그물을 보면서 어설픈 멸치잡이 그물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물에는 보통의 거미처럼 일정지역에 처놓고 먹잇감이 걸리기만 기다리는 것도 있고, 어떤 거미는 끈적이 그물망을 펴서 쥐고 내려다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곤충에게 갑자기 그물을 뒤집어씌우고 붙여서 잡는 종류도 있다. 좌우간에 그물은 약한 생명체들에게는 공포의 무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인간사에도 거미처럼 그물을 치고 기다리는 사기꾼들이 있다. 소위 보이스 피싱이라는 전화를 이용한 투망이다.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전화음성을 보내고 걸려드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시해버리면 될 일을 가지고 이런 엉터리 사기꾼에게도 걸려드는 피해자들도 제법 있다.

가장 무서운 그물은 종교를 가장한 사이비 믿음이라는 그물이다. 여기에 한번 걸려들면 그 집단에서 빠저나오기도 어려워서 영원한 포로가 되고 만다. 헌금을 유달리 강조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부류라고 의심해 볼만도 하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은 공짜로 얻는 것이라면서, 선금 십일조까지 강요한다고 한다. 그리고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목사들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돈 없으면 믿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신자들에게 온갖 “-님”자 붙는 감투를 씌워주고 “끼리”만 놀게하며 끊임없는 쇠뇌공작으로 사슬에 묶여있게 만든다. 또 자기네들끼리는 신자를 빼내가는 “양도둑”을 지킨다면서 서로를 감시하고 싸움도 한단다. 이런 사람들은 한마디로 구원장사꾼들이라고 헤도 심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신자들이 헌금한 돈을 세금도 안내고 자기 개인새산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자기 자식에게 세습하기도 한다. 구원파라는 종교단체 소속의 유람선 ‘세월호’ 침몰의 주인공 고 유병언목사의 일이 바로 우리들 눈앞에서 벌어진 그런 부류였다. 세상이 온통 이런 판이니, 내가 철석같이 신봉하는 사상일지라도 한번쯤은 사색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 상식을 가진 시민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모인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아닐까? 어느 누구가 죄많은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는 “공짜심리”를 버리는 것이 그런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가장 현명한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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