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2】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가 생각난다. 얼마나 사랑했다면 모란이 뚝뚝 떨어진 날을 아직 기다리겠다고 했을까. 분명 모란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다. 사로잡기보다는 가까이 하기엔 오히려 먼 당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눈 속의 매화가 세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줄을 알았다면 차라리 매화를 그리지 않고 붓도 없고, 물감 없이 연지로나마 모란을 그리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눈 속에 피는 매화 비온 뒤 산 빛깔은
보기엔 쉽겠지만 그리기엔 어려워라
세인들 눈 밖에 난다면 연지곤지 그릴 것을.
雪裏寒梅雨後山 看時容易화時難
설리한매우후산 간시용역화시난
早知不入時人眼 寧把연脂寫牧丹
조지불입시인안 녕파연지사목단
차라리 연지로나 모란을 그릴 것을(寧畵牧丹)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다. 재지사림(在地士林)의 주도로 성리학 정치질서를 확립하여 사림파의 사조(師祖)가 되었고 정몽주의 학통을 계승했다. 세조의 즉위를 비판하는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무오사화를 불렀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눈 속에 핀 매화, 비 온 뒤의 산은, 보기엔 쉽지만은 그리기는 어려워라, 진작 세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었다면, 차라리 연지로나마 모란을 그려볼 것을]이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차라리 모란을 그릴 것을]로 번역된다. 16세 때에 과거에 낙방하고 귀향하면서 한강의 제천정(濟川亭) 벽에 붙여 놓았다고 알려진 시다. 세상에 대한 열정도 크지만, 그에 비례하여 실망감도 크겠다. 그래서 다소 가볍게 치기도 한다. 인생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정습명의 시는 슬퍼하되 지나치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로 격조가 높아 흐른다고 한다.
시인은 눈 속에 핀 매화와 비온 뒤의 산을 보면서 이것들은 보기엔 쉽지만 그리기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작 많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나 않았다면 차라리 여자들이 화장할 때에 입술에 바르는 연지로 그리기 쉬운 모란을 그려보았을 것을 하면서 후회는 모습을 본다.
시인은 시심도 대단하지만 시문 속에서 풍기는 화자의 은근과 끈기에 놀라게 된다. 연지로 모란을 그리기는 쉽겠지만, 매화와 산을 그리기엔 어렵다고, 그것이 세인들의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면 후회한다. ‘애이불비’라는 두 마음도 읽게 된다.
【한자와 어구】
雪裏: 눈 속. 寒梅: 찬 매화꽃. 雨後山: 비가 온 뒤의 산. 看時: 때때로 보다. 容易: 용이하다. ?時難: 그리기엔 어렵다, 쉽지 않다. // 早知: 진작 알다, 일찍 알다. 不入: 들어오지 않다. 時人眼: 세인의 눈. 寧: 차라리. 把: 잡다, 갖다. ?脂: 연지. 寫: 그리다, 복사하다. 牧丹: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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