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이발사
상태바
돌팔이 이발사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5.04.16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비가 내린다. 오늘은 교회 모임에서 전주 쪽으로 여행가기로 예정되어 있으나 며칠 전에 찾아온 감기가 아직 나가지 않고 있고 비 예보도 있고 하여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하루를 쉬기로 하였다. 그래서 다른 날과는 달리 느긋한 마음으로 누워 있는데 아내가 아침을 먹으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일어나 세면을 하고 식탁 앞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켜니 성완종 리스튼가 뭔가 하는 뉴스가 며칠 째 계속되고 있다. 어느 기업의 회장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하면서 남기고 간 쪽지가 정치판에 폭풍을 몰고 왔는데 문제는 그 쪽지에 억대의 돈을 주었다고 거명한 이들이 현 정권의 핵심 고위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사람이 죽을 때는 정직 해 진다고 했으니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또 거명 된 이들은 하나 같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니 마녀사냥 몰이로 나설 수도 없고 보면 사실을 규명하기가 난감 하겠지만 그래도 엄정한 수사가 이루어진다면 불가능 하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언제 대형 정치 사건이 공정히 마무리 된 적이 있으며 또 그랬다 해도 국민이 정부를 신뢰 할 수 있었는가 하면서 이번만은 정말로 국민들이 납득 할 만 한 답을 얻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드니 형님 목소리다. 오늘 시간이 있으면 이발을 해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여서 아침을 먹고 올라가겠다고 하니 기다리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내게는 형님이 네 분인데 큰 형님은 오래 전에 고인이 되셨고 둘째 형님은 의정부에서 사시고 셋째형님은 같은 마을에서 사시는 관계로 이발소에 가시기보다는 내가 이발을 해 드렸는데 이번에도 이발 할 때가 되었나 보다. 우리 집에는 이발 기구가 갖추어져 있고 나는 이발사는 아니더라도 남이 보기 싫지 않을 만큼은 할 수가 있어서 자청하여 형님의 전용 이발사가 되었다.
아버지 생전에도 언제 부턴가 내가 이발을 해 드렸는데 그때 마다 이발 보자기를 두르고 나면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께서 당신께 오셔서 고생 많이 하셨다는 것과 나는 뵙지를 못하였지만 할아버지께서 몇 년 만 더 사셔서 당신을 지켜 주셨어도 젊은 시절을 철없이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두 가지 말씀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시곤 하였는데 이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당신 부모님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함축한 말씀으로 당시 젊은 나로서는 구십 노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 마음을 이어받고 있으니 형님의 머리를 깎아 드릴 때 마다 그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내가 처음 다른 사람의 머리를 깎아 주게 된 것은 노인 요양 시설에서 어르신들의 이발을 해 드리게 된 때부터인데 그때는 그냥 긴 머리만 잘라내면 된다 싶어서 가위를 들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발사가 아닌 이발사로서 지금은 형님의 전용 이발사 노릇을 하고 있다.
또 이발 하면 생각나는 것이 우리 아들 다섯 살 때 그러니까 40여 년 전 일이다. 제 엄마가 아이 머리를 깎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여서 보채는 아이를 달래가며 머리를 깎아 주고 있는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드는 바람에 그만 이마 쪽 머리를 싹둑 자르게 되어서 거울을 보고는 울기 시작 하는데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기다. 그 후로는 머리를 깎자고 하면 도망치다시피 하여 어쩔 수 없이 이발소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들은 그 실력으로 어떻게 남의 이발을 해 주느냐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때 일을 내 잘못으로 여기지 않고 머리를 든 아들의 잘못이라고 항변 하고 있다.
이발 기구를 들고서 형님 댁으로 가니 마침 십 수 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형님과 이웃으로 사는 이가 와 있다가 내가 형님 이발 해 드리는 것을 보고는 장로님은 이발도 할 줄 아느냐고 하면서 형님과 나누는 대화가 부럽다고 하기에 별 것을 다 부러워한다고 하였더니 자기는 형제들과 떨어져 살기도 하지만 만나도 별로 할 말이 없는데 자기가 늙어서 지금 우리처럼 대화 할 수 있게 될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비록 돌팔이 이발사지만 가끔은 마을 어르신의 이발도 해 드릴 수 있고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네게 이발을 하시면서 행복 해 하셨고 지금 형님께서도 좋아하시니 나 또한 즐거운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