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약과 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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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약과 독약
  • 이장열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 승인 2015.04.0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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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하나인 사람의 한평생은 그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투병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병(病)이 약할 때는 양약(良藥)을 먹고 곡기(穀氣)로 이기기도 하지만 중병(重病)에 걸렸을 때는 양약(良藥)도 듣지 않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때는 생명을 앗아가는 독약이 거꾸로 양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마저 안 통할 때는 한길(죽는길) 밖에 없다. 투병에서 이겼다는 사람이 자신의 투병생활을 자랑한 후 곧 타계하는 것을 본다. 어차피 생자는 필멸이다. 독약이 양약이 된 경우로는 유명한 우암(尤庵)과 미수(眉?)의 일화가 있다.

조선 선조때 사소한 두 사람의 개인감정으로 시작하여 동서(東西)의 ‘패거리싸움’으로 커진 당쟁은 긴 세월을 이어오면서 남ㆍ북ㆍ노ㆍ소(南北老少)로 갈라져 조정에는 파당신하들끼리 분답과 사생결단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기에는 임금도 예외는 아니어서 성군 정조도, 장조(사도세자)도 당쟁에 희생된 이들이다.
당쟁이 한창 치열하던 효종과 숙종조에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과 남인의 영수인 미수 허목은 서로 극한대립을 벌임으로써 두 집안은 원수지간이었다.
우암은 평소에 매일 아기의 오줌을 받아 마심으로써 남다른 건강을 유지해 왔는데 노년에는 그것이 화근이 되어 오줌버거리가 몸에 쌓이는 불치병에 걸리게 되었다. 우암은 자기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의원은 미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아들에게 미수에게 가서 처방을 받아오라고 했다. 원수집안에 가서 약처방을 받아오는 것이 안심이 안된 우암 아들은 극력 반대하였으나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수 없어서 마침내 미수를 찾아갔다. 그러나 미수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잔뜩 오무린 입으로 “비상(砒霜) 한 돈” 하면서 중얼거리듯 처방을 말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는 생각이라고 굳게 믿은 우암 아들은 아버지에게 와서 그 보라는 듯이 불평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우암은 두말 말고 그대로 약을 지으라고 말하였다. 아들은 할 수 없이 비상을 반으로 줄인 약을 우암에게 드렸고 우암은 그것을 먹고 병은 진정되었으나 완치되지는 않았다. 아들이 다시 미수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며 조제해 주기를 청했더니 미수가 말하기를 비상은 한 번 밖에 쓸수가 없는 것이라며 아주 완치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우암은 장희빈의 아들을 왕자로 세우려는 숙종의 생각에 반대함으로써 왕의 미움을 사서 왕이 내리는 비상을 먹고 죽었다. 우암과 비상은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이상은 독약에 관한 우암과 미수의 일화였거니와 독에는 생명체가 만들어낸 독과 자연계 또는 화학적 제조 독물질이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계의 독으로는 청산이 가장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체가 만들어낸 독은 이보다 훨씬 강해서 복어의 독은 청산(‘사이나’라고 함)보다 275배나 더 강하다고 한다. 호주연해에 사는 입방해파리는 60개의 촉수에 각각 40억개의 쏘는 촉수를 가지고 있어 한 마리가 성인 60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하니 가공할 무기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 독사인 블랙맘바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강한 독을 가진 뱀으로 그 빠르기도 엄청나서 도망도 힘들고 물리면 약도 없고 바로 즉사한다고 한다. 생명을 뺏어갈 독물질은 온 세상에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독물질들은 모두 생명체에서만 그 악명을 발휘할 뿐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사람들에게 속지 않고 살아가야 하고 또 생명을 노리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사방이 살얼음판이라 조심, 또 조심해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인생은 고해(苦海)란 말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약과 독은 그 사용방법에 따라 그 역할이 다를수 있다. 불치병에 특효약은 독약(毒藥)이 처방(절대 죽음의 처방이라는 의미가 아님)일 수가 있음을 앞의 일화에서 알 수 있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암, 에이즈 등에 대한 처방법도 조심스럽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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