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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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마중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5.03.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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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된 추위가 한차례 지나갔다 꽃샘추이라고는 하지만 아침저녁은 아직도 추운 날씨여서 겨울인 듯 봄인 듯 헷갈리기는 해도 절기로는 춘분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이제는 누구나 봄이라 하겠지만 이렇듯 계절이 바뀌는 무렵에는 계절의 구분이 혼돈스럽기는 해도 겨울이 떠나는 길목과 봄이 오는 길목의 교차로에서 서로 만났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은데도 어느새 양지바른 담 밑에는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가 하면 나뭇가지에도 물이 오르는 것이 보이고 농부들의 마음도 들에 나가 있으니 봄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계절도 방향표시가 없는 교차로에서는 꽃샘추위라는 빨간 불이 켜지면 자칫 방향 감각을 잃을 수도 있기에 가는 겨울이나 오는 봄도 제 갈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렸을 적에는 봄이 시냇물을 따라 오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꽁꽁 얼었던 시냇물이 녹으면 가장 먼저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시냇가의 버들강아지였기에 버들강아지가 망울을 틔우고 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 하면 피리를 만들겠다고 성급한 마음에 가지를 꺾어 비틀어 보면서 빨리 물이 더 오르기를 기다렸는데 비가 내리고 시냇물이 많아져야 가지에 물이 오르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고향 마을을 한 바퀴 휘돌아 흐르는 시냇가는 우리들의 사철 놀이터였다. 방천 둑을 따라 펼쳐진 잔디밭과 모래밭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자기 마루에 던져 놓고는 그 곳으로 달려가면 다른 아이들도 영락없이 모이게 마련이여서 계절 따라 멱 감고 썰매 타고 공차기, 자치기, 말 타기를 하면서 놀았기에 그래서 봄도 당연히 그 시내를 따라서 오는 것으로 생각 했던 것이다.
모두가 개구쟁이 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이 지금은 아득히 먼 지난 세월의 이야기이지만 추억은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니 그리움이 또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것도 봄이 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봄 마중을 나서기는 해야겠는데 어디로 갈까 얼른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그 시냇가로 찾아가 보아도 그 때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어지럽게 갈대의 잔해만이 누어있을 터여서 오히려 그리움이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고 이제는 봄이 시냇물을 따라 오는 게 아니고 남쪽에서 바람이 실어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으니 바람 불어오는 곳을 찾아갈까 해도 그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어 선 듯 찾아 나서기도 어렵다. 봄이 오는 양지바른 밭이랑에서 냉이를 캐며 맞이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전에도 그랬듯이 아내에게 제안을 했더니 요즘은 농약 때문에 냉이 캐 먹기도 쉽지 않다며 아직은 좀 이른 것 같다고 하여 그러지도 못하였다, 그렇다고 봄 처녀를 마중 하지 않고 기다리고만 있자니 신사의 도리도 아닐 뿐 아니라 행여 서운히 여겨 우리 집 뜰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당으로 나와 서성이다가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보았다. 3월의 꽃샘추위답지 않게 호된 추위가 지나간 비닐하우스 안에는 어느새 봄으로 가득 차 있다, 마당 자락에 세워 논 십여 평 남짓한 비닐하우스에는 고추 묘가 예쁘게 자라고 있고 겨우내 거실에 있던 화분 몇 개도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그 간 쌀쌀한 날씨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 오늘은 햇살이 포근히 감싸주니 그렇게 마중을 하려던 그 봄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밭이 없다는 핑계로 농사를 하지 않았음으로 해마다 가을이면 형님께서 농사해서 주시는 고추를 비롯한 잡곡 등을 늘 미안한 마음으로 얻어먹었는데 작년에 집을 새로 짓고 이사를 한 까닭에 살던 집을 철거 하고보니 이백여 평의 밭이 생기게 되어 금년에는 나도 고추 농사를 조금 하여 볼 요량으로 온상을 만들게 된 것이다. 고추 농사를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종자 선택부터 묘 기른 방법을 몰라서 형님께 물어보았더니 형님께서 묘를 길러 주시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농약 사에 부탁하면 가식할 수 있을 때까지는 길러주니 그 때 그 것을 받아서 가식하여 기르면 된다고 하여서 2주 여일 전에 가식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어느새 잎이 네 개가 되었다. 그 동안 정성으로 물을 주고 돌보면서 이번 추위로 혹시 얼지는 않았을까 격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잘 견뎌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오늘은 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봄 마중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오늘의 햇살처럼 한결 포근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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