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 형제의 인생 여행
상태바
다섯 손가락 형제의 인생 여행
  • 이영란 수정초등학교 교장
  • 승인 2015.02.26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루가 저물고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한 겨울 밤은 정막하기도 하지만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조용한 밤에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처마 밑에 있는 기다란 고드름을 비추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7남매의 교육에 온 정성을 쏟으시던 우리 부모님께서는 한 겨울에 연료 값이라도 아껴야하기에 커다란 안방에 올망졸망 앉아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고구마를 먹으며 삶의 지혜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우리같이 지긋한 어른이 되면 좋든 나쁘던 추억이 삶의 힘이 된다고 한다. 이런 삶의 긍정적인 힘을 되살려보고자 우리 다섯 손가락 오형제 딸들이 속리산의 정기를 받아 1박 2일로 여행을 하였다. 남들같이 거창한 해외여행은 아니지만 다섯 색깔의 딸들이 시집 가 남의 집 며느리가 되고, 지금은 안주인이 된 지난 세월의 이야기는 정말 값진 삶의 여행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많은 경험이 이야기 거리가 되어 기뻤던 일은 서로 웃고, 마음 아팠던 일은 좀 더 잘 할 걸 하는 반성의 기회도 되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웃음과 울음으로 이어진 다섯 손가락 형제의 인생 여행 이야기를 해 보면
여든이 되어가는 엄지손가락 왕 언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정도의 나이 차이는 세대차이라기보다는 엄마 같은 포근함을 갖게 한다. 오형제 중 제일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갖은 풍파를 지혜와 인내로 55년이라는 세월을 잘 견디신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이며 언니이다. 내가 불만을 하면 너그러운 마음과 논리 있는 설득력으로 동생들을 꼼짝 못하게 하며 좋은 소식이 있으면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하여 축하 해 주는 왕언니 역할에 인생을 배우며 나눔을 배우는 나의 인생 선생님이시다.
모든 것이 계획적이며 집에서도 선생님이었던 검지손가락 둘째 언니!
초등학교 선생님과 시청 공무원을 하신 둘째 언니는 학교 선생님보다 더 무섭고 어려웠지만 나이가 들면서 여동생 삼형제를 위하여 많은 봉사와 도움을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희생한 언니다. 난 중학교 졸업 할 때까지 모든 학생들은 언니가 학비와 학용품을 해결 해 주는 줄 알 정도로 나의 진로에 많은 영향을 준 언니다.
마음이 한없이 착해 동생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준 장지 손가락 셋째언니!
옛날 말에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마음이 부처님같이 순하고 선한 언니이다. 지금은 다섯 딸 중에 제일 먼 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오고 가는 정도는 뜸하지만 항상 언니의 마음을 닮고 싶다. 철없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에 동생과 합심해서 언니에게 골질하고 대들었지만 웃음으로 참아 준 언니의 행동에 항상 감사함을 갖게 된다.
무슨 일이든지 덤비고 보는 약지 손가락 나!
우스갯소리로 딸 많은 집 넷째 딸은 존재감이 별로 없어 있으나마나 한 딸이라 하지만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생존 방식으로 고집이 가장 센 딸이었다. 어쩌다 초등학교를 5년만 배우고 중학교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어 불안한 초등학교 생활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의 경쟁이 치열하여 밤 9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빡빡이라는 숙제에 밤 1시까지 호롱불 밑에서 공부를 하곤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콧구멍이 호롱불의 연기에 새까맣게 되었고, 숙제 하다 졸아 불이 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런 생활은 지금의 어려움을 이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늦둥이로 몸이 약하다고 귀염을 받은 새끼손가락 막내!
노산으로 인한 막둥이 출산은 엄마의 건강까지 위협하여 7살까지 병치레를 하는 연약한 딸이어서 집안일도 많이 감해 주고, 어리광이라는 무기를 가장 잘 활용한 지혜로운 딸이었다. 애교와 이해라는 예쁜 단어로 자기의 삶을 잘 이끌고, 맏며느리와 교사라는 두 역할을 어느 딸보다 잘 해 부모님께 기쁨을 주는 효녀이다. 며칠 전 종영을 한 드라마에서 아버지 역할, 오빠 역할, 삼촌 역할을 성실하게 실천하며 자기의 삶을 희생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듯이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제2의 인생은 봉사와 건강이라는 목표를 갖고 각자의 삶에 충실한 다섯 손가락 오형제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엄마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세상의 모든 일은 노력한 만큼, 생각한 만큼, 땀 흘린 만큼 이루어지듯이 다섯 손가락 형제들은 자기의 장점과 역할을 잘 해 내는 인생 여행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며, 이번 설에는 세뱃돈의 액수가 적어졌다고 미안해하시는 아버지의 삶은 우리의 나침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