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축구계를 접수한 ‘보은 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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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축구계를 접수한 ‘보은 촌놈’
  • 나기홍 기자
  • 승인 2015.02.05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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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사람 - 김영태 부천시 오정구축구연합회 회장
보은읍 월송리가 고향인 김영태(48)씨가 부천시 오정구 축구연합회장에 취임했다. 인구 3만5천의 보은촌놈이 인구가 19만 명이나 되는 부천시 오정구를 접수한 것이다. 객지에서 그것도 몇 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단위클럽 회원에서 연합회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노력과 비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영태 회장을 만나 보은을 떠난 일, 부천에서의 정착과정, 오정구축구연합회장에 오르기까지의 숨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해 연말인 2014년 12월 20일 오후 7시, 경기도 부천시 마노리노에서 오정구축구연합회 회장 이취임식이 성황리에 치러졌다.

이날 제16대 김영태 회장(48)이 취임하여 '부천시 축구는 오정구로부터!'라는 구호아래 힘차게 출발했다.
이 자리에는 김만수 부천시장, 원해영 국회의원, 부천시의회 김문호 의장을 비롯한 서현성, 이진연 의원, 이두식 부천시 축구연합회장 및 축구계인사 등 300여명이 대거 참여해 오정국축구연합회의 위상을 보여줬다.

김 회장은 “저에게는 꿈이 많고 할 일이 많다”며 “오정구 축구연합회 16대 회장으로서 어깨가 무겁지만 오정구 축구대회 시 연령층 출전의 폭을 대폭 넓혀 20대를 출전시키고, 클럽별 실력 차를 극복 할 수 있도록 청년부, 일반부, 장년부로 편성하여 실력으로 인해 소외받는 축구인이 없이 모두가 출전할 수 있는 맞춤형 축구대회를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제반 사업비용과 대회경비를 대폭 삭감하여 보여주기 식 대회보다는 내실 있는 연합회 운영을 해나갈 것이며 부천시연합회와 긴밀히 협조해 오정구에서 찾아올 것은(권리) 다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나의 꿈과 목표는 부천시장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의지와 열정은 어디에서 나올까?
김 회장은 보은이 고향이다. 동광초, 보은중, 보은농고를 졸업했다. 그는 고향 보은에서 꿈과 희망을 키웠다.

부천에서 직장을 다니다 보은에 내려와 유리 창호사업을 하면서 보은지역 최고(最古)의 축구클럽인 삼산조기축구회를 회원 중 거의 제일 어린 나이로 입회해 활동하며 축구를 알았고 축구를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10여년을 선배들로 부터 배우고, 느끼고, 감동받고, 부딪히며 정을 나누고 살았다.
그러다 2003년 보은을 떠나게 됐다.

김 회장은 “처음 유리를 배운 회사에서 사고가 나서 사장님이 몇 달만 와서 관리해 달라고 하는 바람에 고향 보은을 떠나온 것이 여기에 눌러앉게 됐어요. 보은을 떠나온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자주 왕래하고 교류하고 있고, 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테니까요..”

처음에는 몇 달 도와주고 보은으로 내려오려 했지만 원래 부지런하고 완벽한 김 회장을 회사가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관리자로 일하다 보니까 사장님이 부천사업장을 제게 넘겨주시더군요. 제가 대표가 된거죠 뭐”
독립해 부천옆 서울 양천구에 소재한 ‘현대유리특판’의 대표가 된지 7년, 10명이 넘는 직원에 바쁠 때는 일용 근로자를 직원들보다 두 배, 세배로 써야하는 일 많이 하는 안정된 업체로 성장시켰다.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 것이다.
“일하기는 인구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보은보다 여기가 낫죠, 건설이나 그런 계통이 이쪽이 활발 하구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잘 만났어요.” 김 회장은 자기가 잘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겸손하다.

“축구는 김용복 동생 때문에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일 때문에 이 사람을 자주 만났고 현장에서 같이 일을 했는데 축구공을 늘 가지고 놀더라구요. 축구에 미친놈 하나 더 있구나! 했죠”
김 회장이 축구를 다시 시작한 것은 현재 김 회장을 도와 오정구축구연합회 홍보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복씨 때문이다. 김 회장의 대부(代父)인 셈이다.

부천에 올라온 지 3년쯤 되던 해에 “축구하실 줄 아세요?” “잘 하실것 같은데 저랑 같이해요”하는 김용복 부회장의 집요한 권유가 3개월쯤 이어졌고 김 회장은 3개월 후에나 나간다고 했고 6개월 만에 오정구축구연합회소속 단위축구클럽인 신기축구단에 입회를 했다.
“앞으로 축구를 안 한다고 집사람하고의 약속 때문에 안 한지 3년이나 되니까 축구하자는데 도시지역이 축구를 잘 하잖아요. 그래서 겁나더라고요. 그래서 3개월간 시간을 벌어 몸을 만들었죠. 망신당하기 싫어서..”
“입회해서 처음 게임을 하는데 펄펄 날더라고요. 회원들이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김용복 부회장의 증언이다.

김 회장이 소속된 신기축구단은 2015년 현재 2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입회해서 보니까 엉망이더라고요. 월례회도 없고 총회도 없고 그냥 통보만 해주고, 연말되면 돈도 안 맞고, 12월에 들어갔는데 바로 그 다음해에 (한달만에) 임원을 줘서 그때부터 월례회를 하고 경리보고를 하고 정기총회와 결산보고 사업계획 등 행정적 내실을 기했더니 회원들이 믿고 따라주더라.”

김 회장은 불과 한 달만에 신기축구단의 임원이 됐고, 매월 월례회를 개최했고 월례회의시에는 경리보고를 철저하게 했다. 총회는 당연한 것이고 결산보고, 사업 및 예산계획을 승인받아 시행하며 보은에서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접목했다.
“보은에서 삼산조기회 형님들한테 배운 것들이 엄청 도움이 됐어요”
김 회장으로 인해 신기축구단은 행정적 기틀이 잡혔고 이로 인해 집행부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이제는 조직 강화였다.
김 회장은 회원을 세 명씩 불러 참여 독려를 위해 매일 술을 마셨다. 이렇게 두 달 했더니 아침운동에 10여명 나오던 것이 40명 이상이 나왔다. 늦게 오는 사람은 교문 운동장을 걸어버렸다. 이제는 아무 말 안 해도 50명의 회원 중에 30명이상이 아침운동에 나오고 있다.
조직강화에도 성공을 한 것이다.

“이제는 실력이구 테크닉인데, 걱정을 많이 했죠. 볼을 자주차구, 팀워크가 되니까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더라고요. 보은에서 형들한테 배운 건 모닝콜을 비롯해서 이거저거 다 써먹었어요.”

김용복 부회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형은 조직의 귀재같아요, 술 먹여서 꼬셔놓고, 모닝콜을 하더라고요 첨에는 짜증도 내구 했는데 이제는 당연한 게 됐어요. 또 할리우드액션!! 우리는 몰랐는데 형(김 회장)이,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상대가 건드리기만 하면 크게 악!!~~ 하고 소리치면서 쓰러져 알았지? 심판이 헷갈려서 두 번 중에 한번은 파울을 불어주게 되니까. 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이게 통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지금은 자동으로 쓰러집니다. 하하하, 이것도 보은 삼산조기회 형들한테 배운거라네요..”

김 회장은 입회 3년만에 신기축구단의 회장을 맡았고 김 회장의 기획력, 지도력, 조직력에 힘입어 신기축구단은 오정구내 최약체 팀에서 최강팀으로 성장해 우승, 준우승을 휩쓸고 있다.

2003년에 보은에서 올라와 3년만에 2006년에 입회했고 3년만에 2009년에 신기축구단 회장을 맡았고 오정구축구연합회 임원이 된지 다시 3년 만인 2014년 12월에 오정구연합회장에 올랐다.
다시 축구를 시작한지 9년 만에 30개팀 2000여 회원을 보유한 오정구축구연합회 최고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주변에서는 김 회장이 차기 부천시 축구연합회장 ‘1’순위라는 귀띔이다.
김 회장은 “보은은 축구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입니다. 여기(부천)는 경기장 임대료가 낮에 하면 보통 17만원이고 밤에 하면 19만원입니다. 낮에 하면 겨우 2만원 깎아줍니다.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보은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라는 말로 잘 갖추어진 보은의 체육시설들을 부러워했다.
김 회장은 보은의 A무료급식소에 매월 50만원씩 10개월간 개인적 지원을 한바 있으며 신기축구단 임원과 회장, 오정구연합회 임원을 하면서 보은에 대한 지원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은군축구대표팀 유니폼지원도 한바있고, 생대추도 팔아주고, 보은에 거주하는 주민 중 엘리트축구를 하는 자녀에게 장학금도 줬지만 김 회장은 그것을 “고향 선배님들이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아주 조금 보답한 것”이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저의 취임식에 김인수 도의원님을 비롯한 배상철, 김남중, 이병돈, 설찬국 형님들이 와주셔서 얼마나 빛났는지 모른다.”며 두 번 세 번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앞으로는 몸은 비록 떠나있어도 항상 그리운 월송리 어르신들께도 잘 하겠다”고 했다.

“사업의 안정도, 타향에서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 오정구 축구연합회장에 오른 것도 모두가 보은의 선배님들 덕분”이라고 말하는 김 회장의 가족으로는 부인 김양희 (48. 충남 덕산)씨와 2남이 있다.
한편, 고향 월송리에는 부친 김현준(77)씨와 모친 박옥희(73)씨가 계시며 얼마 전까지 보은읍에서 한빛조명을 운영하다 현재는 미원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는 동생 김영일(45)씨가 있다.
정리/ 나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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